[Crossover] Nightmare

2017. 12. 8. 14:17 from 조각글

2012. 04. 02

미완인데다 손댄 지 너무 오래된 글을 백업용도로 옮긴 거라 그냥 접어둡니다.


Constantine(2005) / Supernatural Crossover Fan Fiction

Nightmare

w. Edy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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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콕 설정 일부 차용. AU에 가까울 지도....?
* ​병 속의 폭풍우


Dominion Fan Fiction
About Us
w. Edyie


  세상에. 가브리엘은 새된 감탄사를 내뱉을 새도 없이 다시 들어오는 주먹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하의 가브리엘이? 주먹을 피한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복부로 훅 꽂혀든 주먹이 강한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억 소리가 터져나오고 저절로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가브리엘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재차 들어오는 주먹을 틀어쥐었다. 더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릴 지경이니 일단 방어가 최선이었다. 공격은 씨알도 안 먹히는 걸.
  잠시 평화가 찾아오나 싶더니 손바닥 안에 붙잡힌 주먹이 맹렬히 앞뒤로 움직이다 멈추자, 이번엔 다른 손이 오른쪽 뺨을 올려쳤다. 정확히 말하면 어퍼컷에 가까운 각도여서 가브리엘은 방어태세를 날려버리고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되었다. 대체 이 남자는 뭐지? 뒤로 날려가는 와중에도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가브리엘은 대천사였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인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중재자가 되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물론, 가브리엘이 임무를 아주 잘 수행했냐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가브리엘은 그의 방식대로 인간들을 도우려고 했고, 그 대가로 아버지로부터 인간들이 감히 상처입힐 수 없는 육신을 얻었다. 지상의 어떤 무기도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다만 그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했을 경우 그는 능력을 잃었다. 그마저도 일시적인 현상이라 그가 잘못을 깨달으면 능력은 돌아왔다. 가브리엘의 기억 속에 여태까지 능력을 잃은 적은 딱 한 번이었다.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자.
  사방에 모래 뿐인 사막에 그와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남자 둘 뿐이었다. 가브리엘은 허공에서 곤두박질쳐서 온 몸에 모래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제대로 착지하지 못한 탓에 입과 코에 모래먼지가 들어가 기침이 났다. 콜록거리면서도 가브리엘은 자신이 능력을 잃은 것인지 되짚어보았다. 그럴 만한 사고를 친 적 없다는 결론이 나자, 그는 재빨리 등 뒤에서 날개를 펼치고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느린 걸음으로 가브리엘에게 다가오던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모래폭풍에 시야가 가려지는 지 손으로 눈 앞을 가리며 멈춰섰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날개짓으로 인한 바람이 멎을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가브리엘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동안 능력이 약해졌던 게 분명했다. 천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이렇게나마 남자의 무자비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야 다행이었다. 질문할 시간도 번 셈이었다. 가브리엘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뭐?"
  "너를 공격한 적을 두고 무방비하게 있지 않겠다는 소리야. 가브리엘."

  남자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브리엘이 원했던 대답은 전혀 아니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가브리엘이 당황할 만큼 맹렬히 공격하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나 생각할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목소리였다.
  내가 저 사람을 알던가? 가브리엘의 이름이야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알고있다 치더라도 말투가 달랐다. 남자는 마치 그를 잘 아는 사람인마냥 자연스럽게 조언을 붙였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기억에는 저 얼굴이 없다. 바람에 흩날리는 구불거리는 머리칼과 반듯한 콧날, 일자로 꾹 다물린 입술. 특히나 녹색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인데 저런 인물을 잊을 리 없었다.

  "내가 당신을 알…."
  "내려와."
  "이봐. 일이 꼬여서 내가 당신한테 엄청 맞았는데 두 번은…"
  "나도 두 번 말하는 취미는 없어. 내려와."

  허, 가브리엘은 코웃음쳤다. 지금 누가 우위인데 누구더러 내려오라는 거지? 가브리엘은 부러 크게 날개를 펄럭이기 위해 어깨를 틀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눈 앞에서 남자가 사라지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려, 오라고, 했잖아."

  코 앞으로 다가온 녹빛 눈동자가 그의 감정을 대변해주듯 이글거렸다. 지상에서 3미터 정도 떠있어서 분명 잡지 못할 높이인데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불필요한 고민이 머릿속을 스칠 때 즈음, 그의 얼굴로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방어할 틈조차 없었다. 가브리엘은 머리부터 모래가 가득한 바닥에 떨어졌다.
  골이 울릴 정도로 얼얼한 아픔이 느껴져 떨어지고 난 뒤에도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입에서는 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아무렇게나 뻗은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던 찰나, 눈 앞에 남자의 신발이 들어왔다. 남자는 가브리엘의 옷깃을 잡아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시야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눈 앞에 남자의 얼굴이 놓였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귀담아 듣지 않는 건 여전하구나."
  "대체 누구…"
  "우린 형제야."
  "뭐?"
  "쌍둥이 형제지."

  가브리엘은 뜻밖의 단어에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누구도 그보다 오래 산 이가 없으니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가브리엘은 우선 잠자코 그가 하는 얘기를 듣기로 마음 먹었다. 가브리엘이 도망치거나 공격할 의도가 없어보이자 남자는 편한 자세로 그를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미카엘이라고 했다. 바로 전에 말한대로 가브리엘의 쌍둥이 형제이며, 그 역시 대천사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던 도중, 사고로 둘은 각자 살게 되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미카엘은 이 모든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고 필요한 말만 골라서 얘기해주었다. 그는 가브리엘의 질문에는 곧잘 대답해주었지만 설명을 이후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자신 같은 존재가 혼자일 거라 믿고 지내던 가브리엘로서는 미카엘이 유일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미카엘의 설명에 따르면 가브리엘이 잃어버린 기억- 시간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가브리엘은 다급한 마음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질문을 우수수 쏟아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질문을 퍼붓는 가브리엘에게 손을 뻗은 미카엘이 손목에 걸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가브리엘에게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왜 그래?"
  "이렇게 함께 머물러선 안돼."
  "쌍둥이라면서? 어째서 안된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조금 화가 난 가브리엘이 언성을 높였다. 그에게 하나 뿐인 가족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이 물러선 만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다가온 만큼 미카엘이 다시 뒷걸음질 쳤다. 미카엘은 가브리엘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없어. 다음에 다시 보자."
  "이해가 안돼. 대체 왜…."
  "그게 우리의 벌이야. 가브리엘."

  뭐? 가브리엘이 되묻기도 전에 미카엘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어깨 뒤로 날개가 펼쳐지며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이 쫓아올 새라 뒤로 몸을 물리더니 덧붙였다.

  "찾아오지 마. 내가 올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가브리엘이 다시 반문할 즈음, 미카엘은 등을 돌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가브리엘은 사라지던 미카엘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가브리엘과 쌍둥이라면 양 쪽 모두 검은 깃털로 뒤덮여 있어야 할 날개가 한 쪽만 하얀 깃털로 반짝였다. 다음 번에 해야할 질문 하나를 삼키며 가브리엘은 옷에 달라붙는 모래를 털어내었다.


Posted by Edyie :

+ 맨프엉 개봉 1주년 기념 합작에 제출했던 글. 다른 존잘님들의 글은 이쪽에서 확인해주세요!



Not bad

w. Edyie



  넓은 회장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와 향마저 아름다운 음식들을 뒤로 한 나폴레옹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바삐했다. 평소라면 임무를 끝냈어도 느긋하게 호화로운 파티 분위기를 즐겼을 그였지만, 그 날은 오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임무를 하는 도중 혀를 축일 정도로만 마셨던 몇 잔의 술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나폴레옹은 챙겨야 할 물건을 손에 넣자마자-그의 삶을 통틀어 매우 드물게도- 자리를 벗어났다.

  겨울이 가까워질 무렵이라 밤공기는 쌀쌀하기보다는 춥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했다. 코트 깃을 한껏 세워 얼굴을 묻은 나폴레옹은 고급진 선율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넓다란 정원의 양 옆으로 총총히 박힌 가로수 사이를 지나 그가 걸음을 멈춘 곳에는 작은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익숙한 듯 손을 뻗어 뒷문을 열고 차 안에 몸을 밀어넣었다.


  "세상에.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일은 확실히 끝냈으니 걱정 말고요. 일단 빨리 숙소로 돌아갔으면 하는데요, 개비."


  운전석에서 홱 하니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개비의 물음에도 나폴레옹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이곳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지만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짝 세우고 있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일리야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았지만, 그는 못 본 채하며 넓은 좌석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를 신경쓸 만큼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정수리 끝까지 퍼진 듯한 술기운에 머리가 어지럽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은 차가운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얼굴 위에 가져다대었다.

  대화를 피하고자 하는 그의 행동에 개비는 툴툴거리는 말을 덧붙이며 시동을 걸었다. 옅게 떨리는 진동을 느끼며 잠이 드려는 찰나, 이번에는 낮은 목소리가 그의 잠을 방해했다.


  "솔로."

  "페릴. 나 피곤하니까 이따 얘기해."


  나폴레옹은 눈도 뜨지 않고 길어질 대화를 거절했다. 일리야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시동소리가 가득한 차 안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비가 모는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그가 바랐던대로 이번에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    *



  나폴레옹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절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는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원망하며 눈을 뜨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곰곰히 더듬어보아도 기억이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마냥 조각조각 떨어져 있었다. 일리야의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는 개비의 표정이 떠오르다가 마지막에는 까만 시야뿐이었다. 제대로 기억이 나는 거라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나폴레옹. 정신차려라. 나폴레옹!'

  '몸이 완전 불덩이잖아요. 얼른…'


  사고는 아주 물흐르듯 매끄럽게 일어났다. 유독 몸상태가 좋지 않던 나폴레옹이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열을 못 이기고 쓰러져버렸다. 도착할 때까지 그가 곤히 자는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은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나폴레옹을 깨우려다 야단이 났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이마며 뺨에 느껴진 서늘함으로 둘의 걱정을 알 수 있었다.     술기운 탓인 줄로만 알았던 두통이 오랜만에 된통 걸린 감기일 거라고는 나폴레옹 본인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으니 바빠진 건 함께 움직이던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있던 기억보다 이불 속에서 앓는 소리를 내던 기억이 더 많아 그 이상은 되짚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누워서 무슨 말을 했는 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통에 나폴레옹은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걷고 바닥에 내려섰다. 혹시라도 햇볕이 잠을 방해할까 꼼꼼하게 쳐둔 커튼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걸로 보아 벌써 낮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냥 누워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폴레옹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고 몸을 숙여 구두를 챙겨신은 뒤 방문 앞에 섰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문을 열기 직전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는 매너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정리한 보람도 없이 그는 문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얼굴을 보고 말을 잃었다. 일리야는 소파에 앉아 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 위에 신문을 펼쳐두고 읽던 자세 그대로 나폴레옹을 쳐다보았다. 걸음을 멈춘 것도 잠시, 나폴레옹은 반가움을 드러내며 일리야에게 성큼 다가갔다.


  "개비는 어디 가고 혼자 남아있나."

  "잘난 누구 덕분에 아침에서야 잠들었다. 깨우지 마라."

  "자네도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그랬나. 피곤해보이는데."


  나폴레옹은 손을 뻗어 슬며시 까매지는 눈 밑을 쓸어내렸다. 일리야는 시야를 방해하는 그의 손에서 고개를 돌려 벗어나더니 신문을 접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얼굴에 드러난 피곤함이 나폴레옹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부러 빠져나가는 일리야의 얼굴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일리야는 입으로는 퉁명스레 대꾸하면서도 더 이상 손을 피하지 않았다.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본인부터 챙겨라."

  "너무하는군. 이건 날 위해 차라도 가져온 건가?"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가만히 앉아있던 일리야는 나폴레옹이 테이블 한 쪽에 놓인 보온병에 손을 뻗자마자 그를 자리에 앉히고 대신 일어났다. 그러더니 행여 나폴레옹이 손댈 새라 재빨리 보온병을 다른 손으로 옮겨든 채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응접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에는 음식이 든 접시와 식기, 다른 손에는 물이 든 컵을 들고 돌아와 나폴레옹의 앞에 내려두고 맞은 편에 앉았다. 식기를 건네받아 쥔 나폴레옹이 수저로 휘휘 젓자 주홍빛 수프 사이로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나폴레옹은 잠시 여전히 김이 올라오는 토마토 수프를 응시하다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식기 전에 먹어라."

  "누가 만들었는 지는 안 알려주고?"

  "…맛있을 테니 잔소리 말고."


  반 쯤 확신에 찬 일리야의 모습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어 나폴레옹은 한껏 눈웃음을 지으며 수프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이 들게 하는 맛이 혀 끝을 감돌고 사라졌다. 재료 본연의 맛과 정말 간단히 더한 간 정도 뿐이었지만 입맛이 없던 나폴레옹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나폴레옹이 두어번 먹다말고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지만 일리야는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리야가 가져온 만큼의 양을 비우고 가볍게 요기를 달랜 나폴레옹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냅킨에 입술을 닦았다.


  "아프면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가끔 앓아눕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꿈도 꾸지 마라. 나와 개비가…"


  장난스레 건네는 나폴레옹의 말에 예상대로 일리야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일리야가 매섭게 눈을 치켜뜨기도 전에 나폴레옹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리야의 양 뺨에 손을 가져다대어 얼굴을 끌어안았다. 무방비 상태로 고개를 빼고 있던 일리야가 엉거주춤 일어나자 나폴레옹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고맙다는 뜻이네. 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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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 설정붕괴. 캐붕 주의.


취중진담

w. Edyie


"하하하… 저승!"

"그냥 조용히 가자."

"야아. 내가 술도 샀는데 너무, 어, 각박하게 구는 거 아니야?"


그게 문제지. 내가 너랑 술을 마신 게 문제야. 왕여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키며 어깨에 두른 이를 끌어당겼다. 김신은 평소 짓고 있던 무표정 따위는 잊은 마냥 환하게 웃으며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만 보면 술을 한 궤짝 두고 마신 사람 같았으나 실상은 오늘도 맥주 두 캔이 전부였다. 맥주 두 캔. 두 병도 아니고 두 캔.


앉아서 마시기 시작할 때는 자신있게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고 하더니만, 반쯤 남아있던 두 번째 캔을 한 번에 털어마시는 꼴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고 기어코 김신이 흥에 겨워 손에 검을 쥐는 순간에는 그의 일생에 실수의 한 획이 또 그어지는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는 술에 취한 도깨비가 그러고도 여전히 술을 탐낸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가락을 까딱여 아직 남아있던 제 몫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일어나." 왕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의자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도깨비의 어깨를 슬며시 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집에서 마실 걸. 뭐하자고 덕화를 피한다고 공원까지 나와서 고생을 자처한 걸까. 그는 터져나오는 한숨을 꾹꾹 눌러담으며 손을 뻗는 도깨비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엉덩이를 밀며 바짝 다가선 김신은 고개를 숙이고도 용케 왕여의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같이 가아. 느리고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가 그의 상태를 말해주는 걸 어쩌겠나. 왕여는 한참동안 망설이며 옷을 이리저리 틀며 도깨비의 손을 떼어내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술에 잔뜩 취한 도깨비를 들쳐업고 귀가. 몇 차례 손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던 왕여는 도깨비의 한 쪽 팔을 길게 늘어뜨린 뒤 그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얼른 일어나, 도움 안되는 도깨비. 어느 한 부분도 곱지 않게 내뱉은 말이었으나 퍽 기분이 좋았던 김신은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떼었다.


그 후로는 쭉 이 상태였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 잠 못 이루던 두 불멸자가 함께 나온 탓에 시간은 한참 이른 새벽이었고 근처를 지나가는 인적은 드물었다. 대화소리와 끌리는 발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새벽이기도 했다. 김신이 떠드는 소리만 아니면 정말… 평안한 밤이었을텐데.

어깨를 두르고 길게 늘어진 팔이 자꾸만 밀려내려가고, 만취한 도깨비의 걸음은 평소의 배는 헤매고 느린 통에 왕여는 터져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한 결정이었으나 어쨌거나 이 동행에는 김신이 취하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하고 불편한 스킨십이 존재했다. 왕여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앙 다물기를 반복하며 소리로 만들지 않은 욕을 삼켰다. 축 늘어져 걸음을 따라오던 도깨비는 실없는 농담을 이따금 늘어놓다가 입을 다물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 김신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재미 없어."

"대꾸할 기운도 없으니까 제대로 좀 걸어라."

"어찌 이리 무정해."

"무정한 건 내가 아니고 대책없이 취해버린 도깨비겠지. 반대였으면 네가 나를…"

"어허. 모르는 소리."

"무슨…야, 야!"


잔뜩 꼬인 혀를 쯧쯧 차던 김신이 갑자기 몸을 비트는 바람에 왕여는 두르고 있던 팔을 놓쳐버렸다. 부축도 없이 무릎에 손을 대고 몸을 숙인 김신이 크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한숨처럼 길게 늘어지는 숨이 뱉어낸 주인을 닮아있었다. 다시 데려가기 위해 손을 뻗은 왕여는 마주친 눈빛이 가진 변화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것도 잠시, 또렷한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던 순간은 3초도 가지 못하고 원래대로 스르륵 무너졌다. 그럼 그렇지. 술이 이렇게 일찍 깰 리가 없는데. 왕여는 멈추었던 손을 휘저으며 손짓했다. 김신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반쯤 일으키다 말고 비틀거렸다. 왕여는 이제 그만하라는 투로 쏘아붙였다.


"장난 그만해. 힘드니까."

"나도 똑같이 할 거란 소리야."

"뭘."

"이 상황."

"앞뒤 잘라먹지?"


됐고 가던 길이나 가자. 왕여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 사이에 딱 숨 한 번만 들이키고. 그러나 뒷말은 끝내 소리가 되지 못했다. 숨을 들이키는 찰나. 그 짧은 시간동안 김신은 생각지도 못한 말로 왕여의 말문을 막아섰다.


"그대는 나의 벗이라네."

"도깨비."

"그러니 나도 똑같을 거란 소리지."

"…허."


한껏 취한 주제에 늘어놓는 말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술김에 하는 말일지언정 저렇게 듬직할 일은 뭔가. 잠시 고민하던 왕여가 헛웃음을 내뱉자 김신은 힘없이 넘어가는 고개를 끌어다가 다시 눈을 마주쳤다. 하하하. 소리내어 웃는 모양이 우스워 마주보던 왕여마저 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오늘도 도깨비에게 넘어간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바짝 뒤를 따라붙었다.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왕여가 황급히 입술을 말아물었다. 아, 웃으면 안되는데.

Posted by Edyie :

Constantine(2005) / Dominion Crossover Fan Fiction

기침과 기물파손의 상관관계 (for. 힌님)

w. Edyie



  미카엘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존이 평소 열심히 피워대는 담배 탓에 저 정도는 일상소음과도 같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미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들과 함께 산 세월이 얼마 되지 않지만 미카엘은 그 사소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방에서 달리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미카엘은 그와 한 공간 쓰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존 콘스탄틴 탓에 방 안에 갇힌 신세였다. 존은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카엘의 방-창고에 가까운 그곳을 방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문 앞에 철저히 두 세겹으로 결계를 걸어두었다.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일도 아니었기에 미카엘은 존의 부단한 노력을 가만히 지켜보다 뜻대로 따라주었다. 그러나 그건 암묵적인 동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미카엘이 언제까지고 그의 방식을 쫓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미카엘이 작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길고 목을 긁는 듯한 소리마저 섞여있었다. 미카엘은 귀를 기울인 채 느리게 손을 뻗어 문가를 어루만졌다. 손가락이 문가에 적힌 문자를 스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작은 스파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미카엘은 손을 거두고 시선으로 문가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빼곡히 적힌 문자들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다 이내 사그라드는 모습이 그가 이전까지 만났던 '선택받은 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카엘은 잠시 문 앞에 서서 몇 시간 뒤에 마주할 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   *   *   *


  존은 제 머리 위에 올려지는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뜨기보다는 그 무게를 얹어둔 존재가 누구일 지 고민했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떠오르는 얼굴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절대 그럴 리 없는 인물들 뿐이었다. 이사벨? 가장 최근에 그녀를 보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존은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눈을 떠서 확인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덧붙여서 과분한 오지랖과 호의에 고마워하면 그 뿐이라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존은 손으로 이마 위를 더듬으며 눈을 떴다. 손 끝에는 예상했던대로 적당히 적셔진 수건이 올려져 있었지만, 눈 앞의 상황은 그의 예상-혹은 바람-과 확연히 달랐다.


  "일어났나."

  "네가 왜 여기… Holy shit."


  존은 미카엘의 얼굴을 확인하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걸었던 마법대로라면 미카엘은 이 곳에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이 미카엘의 방문에 닿기 무섭게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문가 전체가 까맣게 그을린 흔적을 남기고 방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휑하니 뚫린 모습이 문을 떼다가 다른 곳에 숨겨놓은 듯한 모양이었지만 존은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둔 마법과 함께 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일의 장본인은 존이 일어날 때까지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두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태평한 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존은 애꿎은 물수건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미카엘은 둔탁한 소리를 따라 돌아보았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멀쩡한 모양이군."

  "어떤 빌어먹을 천사 덕분이지. 이런 것도 천국에서 가르쳐주나?"


  존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책장을 넘기던 미카엘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곧 원래대로 페이지를 넘기고는 무심한 투로 덧붙였다.


  "천국에는 질병이 없다."


  어련하시겠어. 존은 불만 가득한 심정을 담아 대꾸했다. 미카엘은 눈길이 머무는 활자 위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존의 말을 기점으로 시작된 생각 탓에 이미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이어 짧은 순간 미카엘의 눈 앞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미카엘은 결국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존에게 시선을 돌렸다. 존은 어느 새 자리에서 일어나 썰렁한 부엌으로 사라진 뒤였다. 물병과 컵이 놓인 테이블로 돌아온 존은 입에 약을 머금은 채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는 물과 함께 알약을 삼킨 후에야 미카엘과 눈을 마주했다.


  "What." 존이 내뱉은 퉁명스런 물음은 이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미카엘. 미카엘은 속삭임처럼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한 번 시작된 환청은 메아리치듯 미카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미카엘 미카엘 미카엘 미카에-ㄹ. 이 곳에 존재하지 않을 알렉스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천사의 이름을 부르다 일순간 사라졌다.

  미카엘은 이마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퍼뜩 눈을 떴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존이 한 손으로는 제 이마를, 반대 손으로는 미카엘의 이마를 짚고 서있었다. 미카엘은 금방 떨어져나가는 손 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열은 없고."

  "뭘 하는 거지."

  "여긴 천국이 아니라 지상이라 말이지."

  "존 콘스탄틴."


  존은 말을 마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수건을 집어들었다. 그는 손에 잡힌 물건을 휙휙 뒤집어 이리저리 살피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난 이런 재주는 없거든. 존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가벼운 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은 밤 사이와는 다르게 금방 가라앉았다. 잠든 사이에 받았던 간호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존은 눈을 뜨기 전에 그가 생각했던 대로 약간의 성의를 내보였다.


  "나쁘지 않았단 소리야. 천사양반."


  미카엘은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간략한 칭찬 외에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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