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콕 설정 일부 차용. AU에 가까울 지도....?
* ​병 속의 폭풍우


Dominion Fan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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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가브리엘은 새된 감탄사를 내뱉을 새도 없이 다시 들어오는 주먹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하의 가브리엘이? 주먹을 피한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복부로 훅 꽂혀든 주먹이 강한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억 소리가 터져나오고 저절로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가브리엘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재차 들어오는 주먹을 틀어쥐었다. 더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릴 지경이니 일단 방어가 최선이었다. 공격은 씨알도 안 먹히는 걸.
  잠시 평화가 찾아오나 싶더니 손바닥 안에 붙잡힌 주먹이 맹렬히 앞뒤로 움직이다 멈추자, 이번엔 다른 손이 오른쪽 뺨을 올려쳤다. 정확히 말하면 어퍼컷에 가까운 각도여서 가브리엘은 방어태세를 날려버리고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되었다. 대체 이 남자는 뭐지? 뒤로 날려가는 와중에도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가브리엘은 대천사였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인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중재자가 되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물론, 가브리엘이 임무를 아주 잘 수행했냐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가브리엘은 그의 방식대로 인간들을 도우려고 했고, 그 대가로 아버지로부터 인간들이 감히 상처입힐 수 없는 육신을 얻었다. 지상의 어떤 무기도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다만 그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했을 경우 그는 능력을 잃었다. 그마저도 일시적인 현상이라 그가 잘못을 깨달으면 능력은 돌아왔다. 가브리엘의 기억 속에 여태까지 능력을 잃은 적은 딱 한 번이었다.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자.
  사방에 모래 뿐인 사막에 그와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남자 둘 뿐이었다. 가브리엘은 허공에서 곤두박질쳐서 온 몸에 모래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제대로 착지하지 못한 탓에 입과 코에 모래먼지가 들어가 기침이 났다. 콜록거리면서도 가브리엘은 자신이 능력을 잃은 것인지 되짚어보았다. 그럴 만한 사고를 친 적 없다는 결론이 나자, 그는 재빨리 등 뒤에서 날개를 펼치고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느린 걸음으로 가브리엘에게 다가오던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모래폭풍에 시야가 가려지는 지 손으로 눈 앞을 가리며 멈춰섰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날개짓으로 인한 바람이 멎을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가브리엘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동안 능력이 약해졌던 게 분명했다. 천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이렇게나마 남자의 무자비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야 다행이었다. 질문할 시간도 번 셈이었다. 가브리엘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뭐?"
  "너를 공격한 적을 두고 무방비하게 있지 않겠다는 소리야. 가브리엘."

  남자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브리엘이 원했던 대답은 전혀 아니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가브리엘이 당황할 만큼 맹렬히 공격하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나 생각할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목소리였다.
  내가 저 사람을 알던가? 가브리엘의 이름이야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알고있다 치더라도 말투가 달랐다. 남자는 마치 그를 잘 아는 사람인마냥 자연스럽게 조언을 붙였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기억에는 저 얼굴이 없다. 바람에 흩날리는 구불거리는 머리칼과 반듯한 콧날, 일자로 꾹 다물린 입술. 특히나 녹색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인데 저런 인물을 잊을 리 없었다.

  "내가 당신을 알…."
  "내려와."
  "이봐. 일이 꼬여서 내가 당신한테 엄청 맞았는데 두 번은…"
  "나도 두 번 말하는 취미는 없어. 내려와."

  허, 가브리엘은 코웃음쳤다. 지금 누가 우위인데 누구더러 내려오라는 거지? 가브리엘은 부러 크게 날개를 펄럭이기 위해 어깨를 틀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눈 앞에서 남자가 사라지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려, 오라고, 했잖아."

  코 앞으로 다가온 녹빛 눈동자가 그의 감정을 대변해주듯 이글거렸다. 지상에서 3미터 정도 떠있어서 분명 잡지 못할 높이인데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불필요한 고민이 머릿속을 스칠 때 즈음, 그의 얼굴로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방어할 틈조차 없었다. 가브리엘은 머리부터 모래가 가득한 바닥에 떨어졌다.
  골이 울릴 정도로 얼얼한 아픔이 느껴져 떨어지고 난 뒤에도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입에서는 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아무렇게나 뻗은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던 찰나, 눈 앞에 남자의 신발이 들어왔다. 남자는 가브리엘의 옷깃을 잡아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시야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눈 앞에 남자의 얼굴이 놓였다는 사실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귀담아 듣지 않는 건 여전하구나."
  "대체 누구…"
  "우린 형제야."
  "뭐?"
  "쌍둥이 형제지."

  가브리엘은 뜻밖의 단어에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누구도 그보다 오래 산 이가 없으니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가브리엘은 우선 잠자코 그가 하는 얘기를 듣기로 마음 먹었다. 가브리엘이 도망치거나 공격할 의도가 없어보이자 남자는 편한 자세로 그를 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미카엘이라고 했다. 바로 전에 말한대로 가브리엘의 쌍둥이 형제이며, 그 역시 대천사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던 도중, 사고로 둘은 각자 살게 되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미카엘은 이 모든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고 필요한 말만 골라서 얘기해주었다. 그는 가브리엘의 질문에는 곧잘 대답해주었지만 설명을 이후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자신 같은 존재가 혼자일 거라 믿고 지내던 가브리엘로서는 미카엘이 유일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미카엘의 설명에 따르면 가브리엘이 잃어버린 기억- 시간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가브리엘은 다급한 마음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질문을 우수수 쏟아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질문을 퍼붓는 가브리엘에게 손을 뻗은 미카엘이 손목에 걸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가브리엘에게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왜 그래?"
  "이렇게 함께 머물러선 안돼."
  "쌍둥이라면서? 어째서 안된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조금 화가 난 가브리엘이 언성을 높였다. 그에게 하나 뿐인 가족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이 물러선 만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다가온 만큼 미카엘이 다시 뒷걸음질 쳤다. 미카엘은 가브리엘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없어. 다음에 다시 보자."
  "이해가 안돼. 대체 왜…."
  "그게 우리의 벌이야. 가브리엘."

  뭐? 가브리엘이 되묻기도 전에 미카엘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어깨 뒤로 날개가 펼쳐지며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이 쫓아올 새라 뒤로 몸을 물리더니 덧붙였다.

  "찾아오지 마. 내가 올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가브리엘이 다시 반문할 즈음, 미카엘은 등을 돌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가브리엘은 사라지던 미카엘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가브리엘과 쌍둥이라면 양 쪽 모두 검은 깃털로 뒤덮여 있어야 할 날개가 한 쪽만 하얀 깃털로 반짝였다. 다음 번에 해야할 질문 하나를 삼키며 가브리엘은 옷에 달라붙는 모래를 털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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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ine(2005) / Dominion Crossover Fan Fiction

기침과 기물파손의 상관관계 (for. 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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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존이 평소 열심히 피워대는 담배 탓에 저 정도는 일상소음과도 같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미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들과 함께 산 세월이 얼마 되지 않지만 미카엘은 그 사소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방에서 달리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미카엘은 그와 한 공간 쓰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존 콘스탄틴 탓에 방 안에 갇힌 신세였다. 존은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카엘의 방-창고에 가까운 그곳을 방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문 앞에 철저히 두 세겹으로 결계를 걸어두었다.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일도 아니었기에 미카엘은 존의 부단한 노력을 가만히 지켜보다 뜻대로 따라주었다. 그러나 그건 암묵적인 동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미카엘이 언제까지고 그의 방식을 쫓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미카엘이 작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길고 목을 긁는 듯한 소리마저 섞여있었다. 미카엘은 귀를 기울인 채 느리게 손을 뻗어 문가를 어루만졌다. 손가락이 문가에 적힌 문자를 스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작은 스파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미카엘은 손을 거두고 시선으로 문가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빼곡히 적힌 문자들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다 이내 사그라드는 모습이 그가 이전까지 만났던 '선택받은 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카엘은 잠시 문 앞에 서서 몇 시간 뒤에 마주할 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   *   *   *


  존은 제 머리 위에 올려지는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뜨기보다는 그 무게를 얹어둔 존재가 누구일 지 고민했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떠오르는 얼굴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절대 그럴 리 없는 인물들 뿐이었다. 이사벨? 가장 최근에 그녀를 보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존은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눈을 떠서 확인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덧붙여서 과분한 오지랖과 호의에 고마워하면 그 뿐이라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존은 손으로 이마 위를 더듬으며 눈을 떴다. 손 끝에는 예상했던대로 적당히 적셔진 수건이 올려져 있었지만, 눈 앞의 상황은 그의 예상-혹은 바람-과 확연히 달랐다.


  "일어났나."

  "네가 왜 여기… Holy shit."


  존은 미카엘의 얼굴을 확인하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걸었던 마법대로라면 미카엘은 이 곳에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는 시선이 미카엘의 방문에 닿기 무섭게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문가 전체가 까맣게 그을린 흔적을 남기고 방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휑하니 뚫린 모습이 문을 떼다가 다른 곳에 숨겨놓은 듯한 모양이었지만 존은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둔 마법과 함께 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일의 장본인은 존이 일어날 때까지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두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태평한 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존은 애꿎은 물수건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미카엘은 둔탁한 소리를 따라 돌아보았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멀쩡한 모양이군."

  "어떤 빌어먹을 천사 덕분이지. 이런 것도 천국에서 가르쳐주나?"


  존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책장을 넘기던 미카엘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곧 원래대로 페이지를 넘기고는 무심한 투로 덧붙였다.


  "천국에는 질병이 없다."


  어련하시겠어. 존은 불만 가득한 심정을 담아 대꾸했다. 미카엘은 눈길이 머무는 활자 위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존의 말을 기점으로 시작된 생각 탓에 이미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이어 짧은 순간 미카엘의 눈 앞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미카엘은 결국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존에게 시선을 돌렸다. 존은 어느 새 자리에서 일어나 썰렁한 부엌으로 사라진 뒤였다. 물병과 컵이 놓인 테이블로 돌아온 존은 입에 약을 머금은 채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는 물과 함께 알약을 삼킨 후에야 미카엘과 눈을 마주했다.


  "What." 존이 내뱉은 퉁명스런 물음은 이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미카엘. 미카엘은 속삭임처럼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한 번 시작된 환청은 메아리치듯 미카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미카엘 미카엘 미카엘 미카에-ㄹ. 이 곳에 존재하지 않을 알렉스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천사의 이름을 부르다 일순간 사라졌다.

  미카엘은 이마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퍼뜩 눈을 떴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존이 한 손으로는 제 이마를, 반대 손으로는 미카엘의 이마를 짚고 서있었다. 미카엘은 금방 떨어져나가는 손 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열은 없고."

  "뭘 하는 거지."

  "여긴 천국이 아니라 지상이라 말이지."

  "존 콘스탄틴."


  존은 말을 마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물수건을 집어들었다. 그는 손에 잡힌 물건을 휙휙 뒤집어 이리저리 살피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난 이런 재주는 없거든. 존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가벼운 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은 밤 사이와는 다르게 금방 가라앉았다. 잠든 사이에 받았던 간호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존은 눈을 뜨기 전에 그가 생각했던 대로 약간의 성의를 내보였다.


  "나쁘지 않았단 소리야. 천사양반."


  미카엘은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간략한 칭찬 외에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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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원작(드라마) 파괴! 시즌1과 시즌2 사이에 쓰려던 글이었는데...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 비단같은 황금썰을 써주시는 알양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원트윗)



Dominion Fan Fiction

Resurrection (for. 알양님)

w. Edyie



  "알렉스!"


  클레어는 그렇게 소리 높여 외치고는 성큼성큼 앞서가는 남자를 따라 뛰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알렉스는 이제 막 베가에 돌아온 참이었다. 그리고 방금 베가의 높은 성벽과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으로부터 얼마 전 있었던 커다란 '사건'에 대해 전해들었다. 그 소식 때문에 돌아오신 거 아니세요? 경비병의 말을 들은 뒤로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다. 알렉스는 그 길로 무작정 뛰어들어와 클레어를 찾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베가의 수장이 된 클레어는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던 길에 알렉스와 마주치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반갑다거나 어떻게 지냈냐는 인사보다도 먼저 나온 미카엘의 안부에 그녀는 말을 흐렸다. 알렉스는 다급한 마음에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지만 불안한 눈빛만 돌아올 뿐이었다. 알렉스는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그 뒤로 이러한 상황이었다. 알렉스는 미카엘이 있을 법한 장소는 전부 돌아다니며 그를 찾아다녔다. 결국 주변의 보고를 받고 다시 나타난 클레어가 손을 붙잡기 전까지 알렉스는 베가에 존재하는 모든 문을 여닫을 기세였다. 클레어는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알렉스. 미카엘은 죽었어."

  "날개로 총알도 막던 대천사야. 대체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와?"

  "...사실이야. 화장터에 가봐."


  이번에는 알렉스가 뭐라 덧붙이기도 전에 클레어가 먼저 돌아섰다. 그녀는 그의 손을 놓은 뒤,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화장터. 지프가 죽은 뒤로 찾은 적 없던 곳이었다. 지프를 화장할 당시에도 그는 그저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었다. 자신을 키워주지 않았던 아버지. 알렉스가 베가를 떠나기 직전에 찾아와 모든 것을 뒤엎은 그에게 어떻게 작별해야 할 지 몰랐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카엘이라고 했다.

  천사들과의 오랜 전쟁을 이어가는 동안 미카엘이 부상을 입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치명상을 입은 건 얼마 전에 있었던 퓨리아드와의 전투에서 입었던 게 처음이었다. 베가에 사는 사람들과 알렉스는 자연스럽게 그를 '다쳐서 피는 흘릴 지언정 죽지 않는 존재'처럼 여기고 있었다.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건 기정화된 사실처럼 베가를 떠돌았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알렉스는 화장터를 향해 걷는 내내 소문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가 본 현실은 소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정갈하게 쌓아올린 나무기둥들 위로 익숙한 코트자락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자 알렉스는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슬픔이나 애도의 마음이 아니라 허탈함이 그를 쥐고 흔들었다.


  미카엘이 자신의 옆에 노마를 '친구'로 붙여놨던 것부터 시작하여, 가브리엘을 만났을 때 죽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던 일까지. 신뢰란 꽤나 유리와 닮아있어서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카엘과 알렉스의 관계 역시 그러했다. 미카엘은 언제나 말을 아끼는 편이었고, 필요 이상의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알렉스는 그런 미카엘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그가 베카의 숨통을 끊고 달아나다시피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이후 홀로 베가를 떠났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알렉스 나름대로의 정리를 위해서였을 뿐, 이런 결과를 바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알렉스는 쌓아올려진 통나무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새카만 어둠 사이로 며칠 전부터 그를 괴롭혔던 악몽이 다시 한 번 생생하게 그려졌다.


  알렉스의 꿈 속에서 미카엘은 베가의 하늘을 가로질러 날고 있었다. 바다와 맞닿은 어느 곳에서 신을 찾으며 괴로워하던 대천사는 새카만 날개를 펼쳐 베가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오자마자 그를 향해 날아드는 자잘한 화살들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미카엘을 공격한 이는 다름 아닌 그가 지켜오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베카의 죽음을 알았고,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인 미카엘을 적으로 간주했다. 미카엘은 잠시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최대한 방어하는 자세로 그가 지키던 도시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곧 창 하나가 날아들어 그의 날개 하나를 찢어놓았다. 미카엘은 고통스런 얼굴로 추락하며 날개에 박혀든 창 끝을 살폈다. 천공의 철. 그의 상처에서 회수하였던 조각은 다시 그의 날개를 찢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미카엘이 자세를 바로하려 몸을 펴는 순간, 그의 가슴을 관통하며 창 하나가 박혀들었다. 미카엘은 날개짓을 멈춘 채 허공에서 머물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는 숨을 겨우 붙들며 미카엘은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 앞으로 튀어나온 창 끝을 매만지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치 꿈을 꾸는 알렉스와 마주한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렉스.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엘은 눈을 감았다.

  꿈은 거기서 끝이 났다. 알렉스는 자신이 꾸었던 꿈이 정말로 미카엘의 죽음을 보여준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미카엘이 부상을 입었거나 곤경에 처했을 거라고. 그럼에도 모든 일은 미카엘이 바라는 대로 끝났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알렉스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주 보아왔던 뒷모습이 그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느껴졌다. 미카엘, 어째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알렉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는 애도를 표할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미카엘의 장례가 이렇게 끝날 거란 사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미카엘이 그동안 베가를 지켜준 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이렇게 형식만 갖추었을 뿐, 바람에 쓸려가라고 방치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알렉스는 미카엘을 이대로 둘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타오를 만한 물건에 불을 붙여 켜켜이 쌓인 통나무들 사이로 밀어넣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순식간에 옮겨붙어 위로 타고 올랐다. 알렉스는 느린 걸음으로 물러나며 불꽃이 미카엘에게 옮겨붙는 모습을 응시했다. 미카엘의 옷자락부터 그의 몸이 온통 화염에 뒤덮일 때까지 알렉스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노랗고 붉은 빛깔로 타오르던 불길이 끝끝내 미카엘의 얼굴을 덮는 순간, 아래에 쌓여있던 통나무들이 순식간에 물감이 번지듯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파스스 무너져내렸다. 알렉스가 미처 상황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고요히 허공에 떠오른 잿가루들이 뿌옇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알렉스는 잿가루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선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참만에 겨우 맑아진 시선 끝에 흐릿한 인영이 들어왔다. 타오르던 불꽃을 집어삼킨 마냥 빛을 뿜으며 길게 뻗은 형체에게서 검은 날개가 뻗어나왔다. 뒤이어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돌풍이 남아있던 잿가루를 멀리 날려보냈다. 그제서야 알렉스는 눈을 크게 뜨고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눈에 담으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아아. 부르고 싶은 이름 대신 신음 섞인 울음이 터져나왔다. 알렉스는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를 집어삼키려 노력했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 사이로 빛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마침내 또렷이 드러난 형체의 눈꺼풀 아래로 빛이 사그라들고 익숙한 녹빛 눈동자가 반짝였을 때, 알렉스는 쓰러지듯 몸을 웅크렸다. 천사가 줄곧 바라보았던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미카엘은 들려오는 기도소리에 엷게 웃으며 걸음을 떼었다. 아이의 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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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낙원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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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브리엘은 종전의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선택받은 자. 알렉스 레넌이 모든 일을 마치고 지쳤지만 안도한 얼굴로 천국을 올려다보았을 때, 아버지는 작은 아이의 부름에 대답을 주셨다.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아닌 작고 연약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가 아버지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을 멀거니 쳐다보던 가브리엘이 목적을 잃은 분노를 쏟기도 전에 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지상에 내려와 있던 모든 천사들의 머릿속에 잔잔하고도 선명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돌아와라.' 어떤 거추장스런 단어도 붙지 않은 짧은 한 마디에는 쉽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었다. 정말 아버지가 맞는 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처럼 패배를 부정하던 천사들마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다 차지하고 있던 인간의 몸에서, 혹은 새카만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가브리엘은 변화하는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미처 바로잡을 틈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났다. 시작과 같이 아버지의 손 끝에서 갈무리 되어 종지부를 찍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몰랐다. 가브리엘은 올려다보던 자세 그대로 눈꺼풀을 내려감았다.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종전을 축하하듯 쏟아져내렸다. 따스하게 내려는 햇살은 점차 범위를 넓히더니 가브리엘의 뺨에도 와닿았다. 온기가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에 눈을 뜨자 시선 끝에 제 쌍둥이 형제의 얼굴이 들어왔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모든 전쟁을 함께 했던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뜻을 달리 했었다. 그리고 미카엘의 판단이 옳았다. 가브리엘은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형제가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작게 중얼거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알렉스와 대화를 나누던 미카엘은 시선을 옮겨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다. 차분한 시선이 얼굴에 날아들자 오히려 가브리엘은 고개를 돌려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았다. 비스듬하게 숙여진 고개 위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끝났다, 가브리엘."

  "아니, 나는..."

  "가브리엘."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을 자르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검을 쥔 그의 손을 느리게 밀어냈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어깨 아래로 손을 뻗어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마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다는 듯 다독이는 손이 한없이 다정했다. 가브리엘은 그제야 눈을 감고 손아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검이 메마른 땅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자 미카엘이 낮게 웃었다. 맞닿은 옆얼굴이 떨림을 따라 간지럽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침묵하던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가브리엘을 향한 말이 아닌 기도였다. 아버지께 올리는 말이 미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미카엘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가브리엘은 크게 동요했다. 그는 돌아오는 둘 사이의 유대와 기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다급히 팔을 풀고 형제의 어깨를 밀어내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아. 미카엘은 형제를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가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돼. 가브리엘은 통제를 잃고 떨리는 두 손으로 미카엘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선명한 햇살 아래, 진녹빛 눈동자는 흐리게 변했고 가브리엘은 형제의 손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카엘은 그런 가브리엘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조심스럽게 뻗은 손이 머리를 지나 슬픔으로 웅크린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돌아가자,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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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정 와장창

* 가브미카 한움큼

* 현제님 리퀘 키워드 : 날개... 인데 날개는 요만큼



Dominion Fan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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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가브리엘은 주변 골목을 빠르게 눈으로 훑으며 소리쳤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지 벌써 한 시간째였다. 가브리엘은 모든 감각을 유대에 집중하며 길을 걸었다. 이러저리 고개를 돌리며 찾아 헤매던 가브리엘은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고. 모든 것이 평화로운 천국에서 가브리엘의 여유를 흔들어놓은 건 다름 아닌 하나 뿐인 그의 쌍둥이 형제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히 똑같이 구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장 급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머릿 속이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형제 덕에 뒤죽박죽 뒤엉켜 있었다. 감각이 공유될 거란 사실을 미카엘도 모르지 않을텐데 이 정도라면 앓아누울 정도는 아플 참이었다. 곤히 자고 있던 낮잠도 흘러들어온 감각 덕에 날려버린 채 헤매고 있건만 미카엘은 얼굴을 비추기는 커녕 오히려 평소보다 열심히 그를 피해다녔다. 미카엘의 고집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마다 가브리엘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아버지의 은총은 두 형제를 비롯해 모든 대천사들에게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였다. 조금씩 하사받은 능력과 물건 덕에 그들은 영생과 더불어 많은 혜택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은총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천사들은 은총을 쓸 때마다 작은 댓가를 치뤄야 했다. 미카엘의 경우에는 고통이었다. 은총을 사용한 만큼 그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럼에도 미카엘은 은총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다. 결과는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돌아왔다. 고통이 시작되면 미카엘은 방에 얌전히 누워있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몇 번 찾아다가 방에 옮겨다 놓을 적이 있을 정도로 그는 형제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했다. 요즘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또 가브리엘이 모르는 새에 은총을 쓴 모양이었다.

  가브리엘은 어지럽게 도는 감각과 또렷하게 보이는 시야를 동시에 바라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매번 겪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 찾아가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카엘, 차라리 그냥 기다려. 들을 리 없는 생각을 곱씹으며 가브리엘은 털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미카엘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는 지 미카엘의 목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아까보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을 따라 움직였다.


  "오, 미카엘."


  골목 끝을 벗어난 가브리엘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멈춰섰다. 광장. 하급 천사들부터 고위 천사들까지, 수 많은 천사들이 광장에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미카엘이 숨기에는 좋은 공간이었지만, 그를 찾고 있는 가브리엘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가브리엘은 멈춰선 채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천사들의 목소리에 묻혀 미카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기운 역시 느릿하니 가브리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아픈 형제와 숨바꼭질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가브리엘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그의 주변을 지나치던 하급 천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멈춰서더니 풀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위 천사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변화를 바라보다 가브리엘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흐름이 멈춘 광장에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소리가 울려퍼지다 멈춰섰다. 가브리엘은 얼른 소리가 난 쪽에서 가장 가까운 하급 천사의 눈을 빌려 주변을 확인했다. 긴 로브를 뒤집어쓴 미카엘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가브리엘은 허탈하게 웃으며 빙의를 풀었다. 미카엘에게 집중되어 있던 천사들의 이목이 한순간 풀리자 광장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가브리엘은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미카엘은 이미 그의 위치를 들킨 뒤였고 지금의 몸상태로는 달리지도 날지도 못할 게 뻔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카엘의 고통이 공명하듯 저릿하게 울려왔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털어내며 제 형제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카엘이 겨우 손으로 벽을 짚고 돌아간 골목을 돌자마자 다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 끝에 세워진 날개의 장벽이 그와 미카엘 사이에 버티고 있었다. 날개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면서도 제 주인의 고통 때문인지 이따금 흔들리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불어들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입구 쪽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날개 안 쪽에서는 미카엘이 두 팔로 제 몸을 감싸안고 주저앉아 있을 참이었다. 미카엘은 입술 사이로 도망치는 고통을 삼키고, 고통을 댓가로 내리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찬란하고 따스한 햇살을 피해 웅크려 있을 게 분명했다. 또한 그가 아는 미카엘은 고통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은총을 사용하고 다시 앓아누울 미련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가브리엘이 잔소리를 퍼붓거나 화를 낸다고 해서 변할 성정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형제로서 미카엘을 지켜보았지만 정작 이런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갑갑한 마음을 추스리며 걸음을 옮겼다. 멈췄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날개가 또 한 번 들썩였다. 가브리엘은 날개 바로 앞까지 가서야 입을 떼었다.


  "미카엘."


  가브리엘은 차분하게 미카엘을 불렀다. 목소리에는 방금까지 느꼈던 답답함이나 분노 따위가 섞여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형제가 홀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랐다. 어둠에서 탄생한 순간부터 함께였던 형제가 곁에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의 날개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은 땅에 그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날개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 있어, 미카엘. 가브리엘은 그 생각을 끝으로 침묵했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눈 앞에 있는 형제에게 집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느릿한 한숨소리가 날개 안 쪽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기다리던 형제가 날개를 거두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미카엘은 한눈에 보아도 힘들어보이는 얼굴로 가브리엘을 마주보았다. 가브리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대답 대신 팔을 최대한 뻗어 미카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따스한 바람에도 미약하게 떨리던 몸이 토닥이는 손길을 따라 점차 안정을 찾았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제야 가브리엘은 푸스스 맥빠진 웃음을 터트리며 미카엘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돌아가자.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을테니 푹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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