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프엉 개봉 1주년 기념 합작에 제출했던 글. 다른 존잘님들의 글은 이쪽에서 확인해주세요!



Not bad

w. Edyie



  넓은 회장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와 향마저 아름다운 음식들을 뒤로 한 나폴레옹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바삐했다. 평소라면 임무를 끝냈어도 느긋하게 호화로운 파티 분위기를 즐겼을 그였지만, 그 날은 오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임무를 하는 도중 혀를 축일 정도로만 마셨던 몇 잔의 술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덕분에 나폴레옹은 챙겨야 할 물건을 손에 넣자마자-그의 삶을 통틀어 매우 드물게도- 자리를 벗어났다.

  겨울이 가까워질 무렵이라 밤공기는 쌀쌀하기보다는 춥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했다. 코트 깃을 한껏 세워 얼굴을 묻은 나폴레옹은 고급진 선율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넓다란 정원의 양 옆으로 총총히 박힌 가로수 사이를 지나 그가 걸음을 멈춘 곳에는 작은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익숙한 듯 손을 뻗어 뒷문을 열고 차 안에 몸을 밀어넣었다.


  "세상에.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일은 확실히 끝냈으니 걱정 말고요. 일단 빨리 숙소로 돌아갔으면 하는데요, 개비."


  운전석에서 홱 하니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개비의 물음에도 나폴레옹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이곳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지만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짝 세우고 있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일리야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보았지만, 그는 못 본 채하며 넓은 좌석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를 신경쓸 만큼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정수리 끝까지 퍼진 듯한 술기운에 머리가 어지럽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은 차가운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얼굴 위에 가져다대었다.

  대화를 피하고자 하는 그의 행동에 개비는 툴툴거리는 말을 덧붙이며 시동을 걸었다. 옅게 떨리는 진동을 느끼며 잠이 드려는 찰나, 이번에는 낮은 목소리가 그의 잠을 방해했다.


  "솔로."

  "페릴. 나 피곤하니까 이따 얘기해."


  나폴레옹은 눈도 뜨지 않고 길어질 대화를 거절했다. 일리야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시동소리가 가득한 차 안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비가 모는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그가 바랐던대로 이번에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    *



  나폴레옹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절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는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원망하며 눈을 뜨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곰곰히 더듬어보아도 기억이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마냥 조각조각 떨어져 있었다. 일리야의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는 개비의 표정이 떠오르다가 마지막에는 까만 시야뿐이었다. 제대로 기억이 나는 거라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나폴레옹. 정신차려라. 나폴레옹!'

  '몸이 완전 불덩이잖아요. 얼른…'


  사고는 아주 물흐르듯 매끄럽게 일어났다. 유독 몸상태가 좋지 않던 나폴레옹이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열을 못 이기고 쓰러져버렸다. 도착할 때까지 그가 곤히 자는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은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나폴레옹을 깨우려다 야단이 났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이마며 뺨에 느껴진 서늘함으로 둘의 걱정을 알 수 있었다.     술기운 탓인 줄로만 알았던 두통이 오랜만에 된통 걸린 감기일 거라고는 나폴레옹 본인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으니 바빠진 건 함께 움직이던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있던 기억보다 이불 속에서 앓는 소리를 내던 기억이 더 많아 그 이상은 되짚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누워서 무슨 말을 했는 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통에 나폴레옹은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걷고 바닥에 내려섰다. 혹시라도 햇볕이 잠을 방해할까 꼼꼼하게 쳐둔 커튼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걸로 보아 벌써 낮이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냥 누워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폴레옹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고 몸을 숙여 구두를 챙겨신은 뒤 방문 앞에 섰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문을 열기 직전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는 매너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정리한 보람도 없이 그는 문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얼굴을 보고 말을 잃었다. 일리야는 소파에 앉아 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 위에 신문을 펼쳐두고 읽던 자세 그대로 나폴레옹을 쳐다보았다. 걸음을 멈춘 것도 잠시, 나폴레옹은 반가움을 드러내며 일리야에게 성큼 다가갔다.


  "개비는 어디 가고 혼자 남아있나."

  "잘난 누구 덕분에 아침에서야 잠들었다. 깨우지 마라."

  "자네도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그랬나. 피곤해보이는데."


  나폴레옹은 손을 뻗어 슬며시 까매지는 눈 밑을 쓸어내렸다. 일리야는 시야를 방해하는 그의 손에서 고개를 돌려 벗어나더니 신문을 접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얼굴에 드러난 피곤함이 나폴레옹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부러 빠져나가는 일리야의 얼굴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일리야는 입으로는 퉁명스레 대꾸하면서도 더 이상 손을 피하지 않았다.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본인부터 챙겨라."

  "너무하는군. 이건 날 위해 차라도 가져온 건가?"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가만히 앉아있던 일리야는 나폴레옹이 테이블 한 쪽에 놓인 보온병에 손을 뻗자마자 그를 자리에 앉히고 대신 일어났다. 그러더니 행여 나폴레옹이 손댈 새라 재빨리 보온병을 다른 손으로 옮겨든 채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응접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에는 음식이 든 접시와 식기, 다른 손에는 물이 든 컵을 들고 돌아와 나폴레옹의 앞에 내려두고 맞은 편에 앉았다. 식기를 건네받아 쥔 나폴레옹이 수저로 휘휘 젓자 주홍빛 수프 사이로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나폴레옹은 잠시 여전히 김이 올라오는 토마토 수프를 응시하다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식기 전에 먹어라."

  "누가 만들었는 지는 안 알려주고?"

  "…맛있을 테니 잔소리 말고."


  반 쯤 확신에 찬 일리야의 모습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어 나폴레옹은 한껏 눈웃음을 지으며 수프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이 들게 하는 맛이 혀 끝을 감돌고 사라졌다. 재료 본연의 맛과 정말 간단히 더한 간 정도 뿐이었지만 입맛이 없던 나폴레옹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나폴레옹이 두어번 먹다말고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지만 일리야는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리야가 가져온 만큼의 양을 비우고 가볍게 요기를 달랜 나폴레옹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냅킨에 입술을 닦았다.


  "아프면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가끔 앓아눕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꿈도 꾸지 마라. 나와 개비가…"


  장난스레 건네는 나폴레옹의 말에 예상대로 일리야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일리야가 매섭게 눈을 치켜뜨기도 전에 나폴레옹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리야의 양 뺨에 손을 가져다대어 얼굴을 끌어안았다. 무방비 상태로 고개를 빼고 있던 일리야가 엉거주춤 일어나자 나폴레옹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고맙다는 뜻이네. 일리야."



'사각사각 > TMFU'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프엉 전력 (주제:봄)  (0) 2016.10.03
맨프엉 전력 (주제:구두)  (0) 2016.10.03
맨프엉 전력 (주제:귓속말)  (0) 2016.10.03
맨프엉 전력 (주제:거울)  (0) 2016.10.03
맨프엉 전력 (주제:잠옷)  (0) 2016.10.03
Posted by Edy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