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07


* 일리야솔로


맨프엉 전력주제 : 귓속말

w. Edyie



  개비 텔러는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은 두 사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녀는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한쪽 눈썹을 말아올렸다. 둘 사이 기류가 심상치가 않다. 개비는 이런 날엔 자리를 박차고 나가 홀로 산책하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애석하게도 날씨가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는 창밖에서 후두둑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슬쩍 젖은 모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옆자리 의자에 놓인 챙이 긴 모자는 벌써 비를 맞아 촉촉히 젖어있었다. 마음에 들었던 모자였는데. 개비는 한숨을 폭 쉬었다가 때맞춰 들리는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신문이 팔랑거리는 소리가 개비의 왼편에서 들렸다. 잠깐 신문 사이로 드러난 얼굴이 평화롭다 못해 태평하게 보여서 개비는 저도 모르게 하-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 지 신문 뒤로 사라졌던 얼굴이 신문을 반으로 접어내리고는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오자 개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반대편이자, 그녀의 오른편에 앉은 남자를 가리켰다.


  "저러다 신문이 찢어지던가, 테이블이 뒤집히던가 둘 중 하나겠어요. 그만 모른 척 해요."


  항상 입던 갈색 자켓을 걸치고 헌팅캡을 눌러쓴 러시아 남자가 그녀의 손 끝에 있었다. 일리야는 개비가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건너편에서 펼친 신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행동을 모르지 않지만 신경을 쓸 여유가 퍽 없어보이는 자세였다. 개비가 아는 한, 일리야의 문제는 신문 너머에 자리한 인물이 쥐고 있었다. 눈치 빠른 나폴레옹 솔로는 그가 자리를 잡고 앉을 때부터 집요하게 따라붙은 시선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 눈빛을 마주보거나 무슨 용건이냐고 묻는 대신 정중하게 카페 종업원에게 오늘자 신문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고, 신문을 받자마자 얼굴을 가려버렸다. 평소의 솔로라면 읽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신문이 반절 정도 밖에 넘겨지지 않았으니 명백히 속임수였다.

  흠흠. 솔로는 개비의 매서운 눈빛을 가볍게 넘기며 가라앉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신문 아래 놓인 그의 물잔을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는 개비가 빨랐다. 그녀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솔로가 쥐고 있던 신문을 낚아챘다. 솔로가 손에 힘을 주기도 전에 짧게 잡고 있던 신문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개비 앞으로 곱게 접혀 내려왔다. 한순간에 무방비 상태로 드러난 솔로가 개비를 올려다보며 미간을 좁혀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개비는 그제야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건너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로 동그랗고 작은 주먹이 가볍게 노크하자 일리야가 시선만 옮겨 개비를 바라보았다.


  "이제 잘 보이죠? 알아서 해결해요."

  "고맙군."

  "아, 아침부터 비를 맞았더니 기분이 영 찝찝하네. 씻으러 갈 테니까 즐거운 대화 나눠요."


  개비는 싱긋 미소를 띈 얼굴로 둘을 번갈아보다 옆자리에 두었던 모자를 챙겨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솔로는 상황을 정리하고 빠져버린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말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거야 원. 가볍게 한숨을 내쉬려고 숨을 들이쉬기 무섭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우보이. 개비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일리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솔로는 기어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자네가 왜 그렇게 심통이 나있는 지 모르겠군."

  "허.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내 기억대로라면, 어젯밤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


  뭐라 대꾸하려던 일리야가 입술을 달싹이다 말고 꾹 다물었다. 쏘아보는 눈빛이 수그러들지 않은 걸로 보아 두 배는 속이 뒤틀렸을 게 분명했다. 밤새 그럴싸한 말을 속삭이던 사람이 맞는 지 솔로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았으니 그에겐 해야할 일이 있었고, 그건 일리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전에. 솔로는 손 끝으로 재킷 매무새를 가다듬고 여전히 조개처럼 입을 다문 일리야에게 다가갔다. 그가 점점 다가갈 수록 일리야의 시선도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속에 담고 있는 불만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금 오만하게 치켜든 턱을 바라보던 솔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반응도 빠르게 일리야는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이윽고 상체를 숙여 그의 귓가에 내려온 솔로의 입술에 집중했다.


  "……-."

  "뭐?"

  "알아들었으면서 뭘 되묻고 그러나. 나 먼저 일어나지."


  일리야는 여전히 눈가에 준 힘을 풀지 않고 솔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솔로는 돌아서기 전에 가볍게 지은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구두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뒷모습이 꽤나 경쾌해보여 일리야는 솔로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을 자리에 앉아 문가를 바라보았다. 허. 기가 막힌 심정에 내뱉을 거라고는 짧은 탄식 뿐이었다.

  말도 없이 아침에 떠난 모양이 얄밉기 짝이 없었는데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자네가 귀여워서 그런거니 너무 서운해 말게.' 라니. 일리야는 그 말을 곱씹다 고개를 저었다.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테이블 위에 그의 몫으로 놓인 커피잔을 들어 마시다말고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는 지나치게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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