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4. 10


* 일리야솔로


맨프엉 전력주제 : 봄

w. Edyie



봄은 나른한 계절이다. 솔로는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더 힘껏 감은 채 더듬거리는 손으로 이불 끝을 찾았다.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에 솔로는 이불이 손가락에 걸리자마자 틀어쥐고 잡아끌었다.

그러면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포근한 이불이 위로 올라와야 하는 게 맞았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로부터 그를 가려줄 그늘을 만들어줘야 정상인데, 솔로의 이불은 그렇지 못했다. 부드럽게 따라오던 이불이 무언가에 걸린 듯 턱하니 멈춰섰다. 솔로는 침대 틈새에 끼었나 싶어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두어번 더 흔들었다. 그러나 한 번 멈춰선 이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솔로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일리야. 솔로는 이불을 붙잡은 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깰 때까지 소리도 내지 않던 일리야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일어나라. 카우보이."

"…그냥 못 본 척하고 아까처럼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카우보이."

"밤새 한숨도 못 잔 거 알잖아."

"나폴레옹."


여전히 눈을 감고 투정을 부리던 솔로의 눈동자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눈 밑부터 눈동자까지 졸음이 가득할 게 뻔한데 이 융통성 없는 파트너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맙소사.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마른 세수를 하는 두 손 사이에 웅웅거리며 울렸다. 솔로는 느릿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로 어제 끝났던 임무는 꽤나 고된 편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 일이 많지 않았지만 타겟이 미적대며 시간을 끄는 통에 기다림이 길어졌다. '차라리 죽이지 않는 선에서 총으로 한 발 쏴도 된다고 했으면 좋겠네요.' 한숨과 함께 터지는 솔로의 말에 기다리다 지친 개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한 타겟을 붙잡아야 하는 경우는 그만큼이나 귀찮은 일이 많았다. 이동하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사실을 빨리 눈치챘고, 몸을 숨기는 데도 능통했다. 함정도 걸리지 않았고, 솔깃한 거래-이 역시 거래를 빙자한 함정이었으나-도 받아들일 듯 하더니 직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겨울 추위가 한창일 무렵에 시작된 임무는 요리조리 잘도 도망치는 타겟 덕분에 찬바람이 누그러들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웨이벌리가 사전에 말한대로 정말 '상처 하나 없이'까지는 아니었지만 팀원 중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았다. 장작으로 뒤통수를 한 대 때린 정도야 그들이 타겟 때문에 했던 고생에 비하면 양호하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 웨이벌리도 한숨을 푹 쉬는 걸로 보고서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임무를 끝으로 모두가 바라던 휴가가 찾아왔다.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헤어졌는데, 일리야는 자신의 짐을 집에 풀어두기 무섭게 솔로의 집을 찾아왔다. 막 잠에 빠지려던 사람을 깨워 현관문을 열게 하더니,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입술이 뺨 위로 내려앉았다. 허탈하게 웃던 솔로가 일리야의 목에 손을 감고 시작한 입맞춤부터 밤은 느릿하게 흘렀다. 임무를 하는 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만큼 일리야는 솔로를 놓아주지 않았고 동이 조금 틀 때 즈음에야 겨우 눈을 부칠 수 있었다.

그래서 솔로는 눈 뜨기가 이렇게나 힘든데 저 러시아 사내는 대체 무슨 체력으로 남의 잠마저 방해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아. 솔로는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침대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일리야를 쳐다보았다. 의자에 앉은 모습이 평소와 다름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때에는 대게 깔끔한 차림은 솔로의 몫이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한 쪽에 걸쳐진 목욕가운을 대충 두르고 욕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로 바깥에서 일리야가 움직이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솔로는 느긋하게 몸을 씻었다.


솔로가 한참만에 개운한 얼굴로 욕실문을 열고 마주한 광경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일리야 쿠리야킨이 요리하는 모습이라니. 흔하지 않은 모습을 눈에 담던 솔로가 소리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가 나오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는 일리야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걸어왔다.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는 표정이 진지하면서도 덤덤했다.


"바깥에서 기다려라. 나폴레옹."

"물론이지."


일리야의 말대로 햇살이 잘 드는 테라스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 솔로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은 화분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하하하. 화분에 심어진 앙증맞은 노란 꽃을 발견한 솔로가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What. 퉁명스런 대꾸가 부엌에서 비집고 나오자 웃음은 더 겉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솔로는 몸을 돌려 요리를 들고 나오던 일리야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봄을 데려온 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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