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프엉 전력주제 : 구두

w. Edyie



  1.

  나폴레옹 솔로는 무언가 걸리는 느낌에 발을 들어 구두코로 바닥을 쿡쿡 찔렀다. 하지만 구두는 벌어지는 틈도 없이 멀쩡히 붙어있었다. 이상하다. 자세히 살펴볼까 싶어 조금 기울인 고개 위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뭐하나. 카우보이."


  목소리를 따라 숙였던 고개를 다시 올리자 일리야가 팔짱을 껴고 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빤히 닿아오는 솔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눈빛을 더 매섭게 하며 슬쩍 턱을 치켜들었다. 왜. 직접 입을 움직여 묻지는 않았지만 의미 전달이 확실한 눈빛이었다. 솔로는 순간 구두에 손을 댔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찾아낸 추적기를 서로에게 던진 게 불과 하루 전 일이었다.

  떼어진 입술이 무어라 소리를 내는 대신 한숨을 내쉬자 일리야의 눈꼬리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솔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페릴. 부드럽게 굴자고."

  "할 말 있으면 해라."

  "개비 일로 예민한 건 알겠는데 너무 날세우지 말란 소리야."

  "지금 그 말이…"


  이럴 때는 누가 스파이 아니랄까봐 눈치가 빠르다. 화제 돌리는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솔로는 얼른 의자에 걸쳐두었던 재킷을 집어들었다. 때마침 개비와 그녀의 삼촌이 탄 차량이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킷에 팔을 끼워넣으며 솔로는 느긋하게 미소지었다.


  "일할 시간이네. 난 빅토리아를 만나러 갈테니 자네도 출발해."


  솔로는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재빨리 호텔방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이 닫힐 때까지 일리야의 대답도,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벌써 따라와도 모자랄 성격이 분명한데. 솔로는 잠시 뒤돌아보았다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확인차 구두코를 다시 한 번 바닥에 찍었지만 여전히 구두는 멀쩡했다. 걸리는 느낌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솔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2.

  커버가 날아갔다.

  일렁이는 시야는 솔로의 통제를 벗어나있었다. 기어코 빅토리아의 입에서 자신의 본명이 나왔을 때, 솔로는 최대한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얻어두어야 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사진들을 한 번 스윽 훑어보고나자 숙취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솔로는 빅토리아가 하는 말에 가볍게 대꾸하며 한 쪽에 놓여있던 쿠션을 집어들었다.

  하나, 둘. 쿠션을 쌓고 누울 자리를 손으로 눌러보던 솔로는 발 끝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잠시 시선을 옮겼다. 낯선 감각이 발 끝에서 발바닥을 타고 흘렀지만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깨어나서, 그에게 시간이 있다면, 확인해볼 일이었다. 솔로는 쿠션을 베개 삼아 소파 위에 길게 누웠다.


  "잘 자요, 나폴레옹."


  반갑지 않은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3.

  솔로는 이를 악 물고 손에 잡힌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손가락마다 연결된 금속 장치로 저릿하다 못해 온몸을 뒤흔드는 감각이 흘러들어왔다. 허리와 머리에 감긴 가죽벨트가 발악하려는 몸을 단단히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내려감은 눈꺼풀 아래로 빛이 번쩍거리는 듯한 환각이 매초마다 반복해서 나타났다. 정신이 제대로 붙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펄떡거려도 모자란 몸을 덜덜 떨며 입술 사이로 흘러나가려는 신음을 삼키는 게 전부였다.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서 안타깝네. 빅토리아는 빈 말을 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솔로의 죽음을 명령했을 것이다.   그녀의 방식대로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렇다면 그가 살아서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잠시 헤아리던 솔로는 고통에 굴복했다.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내는 기분이었다. 뒤통수가 뻐근해지고 코 끝에서 윗입술을 타고 미적지근한 기분이 들 때서야 루디는 페달에서 발을 떼었다. 참고 있던 숨이 한꺼번에 터지며 저절로 신음이 터졌다.

  연결된 장치들을 모두 떼기 전까지는 자유로울 리 없었지만, 솔로는 숨을 고르는 동안 눈동자를 굴려 문 밖을 쳐다보았다. 옆에서 무어라 떠드는 루디의 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빅토리아가 왔을 때부터 무장을 하고 움직이던 경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딱딱하게 굳은 채 옆얼굴을 보여주며 움직이던 때와는 다른 움직임에 솔로는 눈가에 힘을 주었다. 경비는 비틀비틀 옆으로 움직이다 풀린 눈동자로 쓰러졌다. 솔로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이내 익숙한 옷차림의 러시아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페달이 달칵거리는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떠도 일리야는 여전히 시야에 있었다.

  그제야 확신이 든 솔로는 묶인 상태에서 억지로 뒤척였다. 일리야는 검지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솔로는 혼자 떠들어대는 루디의 말을 넘겨들으며 간신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묶여있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루종일 그를 괴롭혔던 구두가 있었다.


  저 구두를 확인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떠올린 솔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였군. 생각을 정리한 솔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자네를 보게 되서 정말 기뻐."



요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