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tantine(2005) / Supernatural Crossover Fan Fiction
Nightmare
w. Edyie
담배를 입에 문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가 비척대는 걸음으로 볼링장 계단을 터벅터벅 밟았다. 잔기침을 더한 느릿한 걸음으로 이층 문 앞에 도달한 그는 잠시동안 그 앞에서 서서 눈을 굴렸다. 문턱과 문 주위를 짧게 훑어본 남자는 한 손으로 담배를 잡고 바닥을 향해 담뱃재를 털었다. 무심한 그의 손짓에 붉은 담뱃재가 회색으로 변하며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졌다. 존은 다시 끝이 발갛게 타오르는 담배를 입에 물고 문 손잡이를 돌렸다. 조금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의 눈 앞에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밤이지만 네온사인이 밝게 빛나는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골목에 위치한 그의 집. 이 곳이 바로 존이 유일하게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가 밀고 들어온 문과 난간 사이에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은 그에게 있어서 보험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문을 닫기 전 문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이 짧게 자신이 만들어놓은 결계가 깨진 곳은 없는 지 확인하고나서 문을 닫았다. 그러자 작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결계가 있는 이 곳만큼은 그가 자고 있어도 공격할 악마나 혼혈종이 없었다.
존은 담배연기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처럼 포근하고 아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 뿐인 안식처라는 생각에선지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가볍게 인상을 쓴 존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잔에 양주를 부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빈 속이었지만, 원래부터가 끼니를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었기에 존은 개의치 않았다. 서늘한 술이 넘어가자, 그 지나간 자리대로 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인지 겨우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미약한 술냄새가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더 마실까 해서 술병을 잡았던 존은 마개를 도로 돌려막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갑작스런 주인의 방문에 낡은 매트리스가 삐걱소리를 내며 그를 반기는 소리를 냈다. 개운하게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무겁게 늘러붙은 몸 탓에 존은 금방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존은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에서 새어들어오는 불빛이 밋밋한 천장 위에서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며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었다.
그의 친구들이 죽었고, 유일한 조수도 죽었으며, 심지어 존 자신마저 죽었었다. 다시 그 망할 지옥에 떨어질까 염려했던 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은 너그럽게도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존이 시원스레 엿먹인 루가 그 꼴을 두고보지 않았다. 넌 살아서 네가 지옥에 와야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해. 그렇게 속삭이며 자신을 살려낸 루시퍼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지만, 그 모든 일이 존에게는 마치 오래된 과거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는데, 이번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것에 대해 죄책감은 없었지만 허전함이 밀려왔다. 이제 그에게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고 추천해주며 기침약을 덤으로 주던 비먼은 없었으며, 노란 택시를 끌고 다니며 투덜대던 채즈도 없었다. 그들이 해주던 일을 직접할 때마다 존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젠장. 생각이 많은 탓에 멀미를 하듯 어지럼증까지 밀려오자 존은 눈을 꾹 감아버렸다. 하지만 밝은 네온사인 불빛 탓에 쉽사리 잠들 수 없자, 그는 눈꺼풀 위로 손을 들어올렸다. 눈을 가리자 정말 고요한 어둠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밤에 잠이 들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이란 사실을 잘 알았지만 그는 그저 잠들고 싶었다. 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악몽 따위는 이미 그의 관심 밖이었다.
"......"
카스티엘은 무심코 열었던 입을 소리없이 닫아버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윈체스터 형제와 보내는 카스티엘이었지만, 그는 가끔 새벽 늦게까지 잠들지 않은 존과 대화를 나누거나 술을-마시는 것은 존 혼자였지만- 마시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찾아왔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는 펄럭이는 날개 소리와 함께 조용했던 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존, 하고 부르려던 카스티엘은 그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대로 소리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카스티엘이 기억하는 한, 그는 존이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존이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카스티엘의 머릿 속에서 잠을 자지 않는 건 천사와 악마 뿐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카스티엘이 지금 보고 있는 존은 평소와 달랐다. 뭐가 급했는 지 트렌치코트까지 입은 채 이불 위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날카로운 평소와는 달리 조금 유연하게 느껴져 카스티엘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일찍이 지옥을 보았고, 최근에는 천국의 문턱까지도 가봤지만 결국은 살아있는 인간. 루시퍼가 '그릇'으로서 샘을 탐내는 것과 달리 영혼 그 자체를 탐내는 인간. 신도 천사도 악마도 혼혈종마저도 돕지 않는 인간. 온갖 신기한 호칭을 가진 존은 그 호칭들이 무색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한 모습에 카스티엘은 의아함을 느꼈다. 카스티엘은 딘이 가끔 꿈을 꿀 때마다 그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카스티엘이 딘에게 부탁받은대로 깨우거나 진정을 시키곤 했지만, 딘은 깨어나서도 한참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있곤 했다. 그러다 샘과 따로 떨어져 움직이던 어느 때, 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캐스. 악몽을 꾸면, 꼭 지옥이 나와. 한참이 지난 일인데도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
딘은 가볍게 농담을 하듯 그렇게 뱉었지만, 그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옥을 보고, 지옥을 엿보기도 하며, 루시퍼를 만난 존은 어떨까. 카스티엘은 고요한 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은 미간을 구기며 손가락을 가볍게 달싹였다.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그 행동에 딘에게 하던대로 깨워주려 몸을 일으킨 카스티엘은 그대로 허공에 멈춰섰다. 두어번 경련하듯 손을 움직인 존은 어느 새 눈을 크게 뜬 채, 천사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가 위협이 될 만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카스티엘은 피하지 않았고, 눈 뜨자마자 무단침입한 불청객을 맞이한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존."
놀란 기색도 없이 무덤덤히 말하는 천사를 노려보던 존은 멱살을 풀어주며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 라고 대꾸했다. 자다 일어난 상태로 대답한 탓에 목소리가 엉망이었지만 역시 존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카스티엘은 존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존이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노려볼 때 즈음에서야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존."
"왜. 듣고 있으니까 말해."
"너도 지옥이 두려운 건가."
지옥이 두려운가. 천국을 관리하는 천사가 묻기엔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존이 아는 카스티엘은 농담을 할 줄 아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스티엘은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그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스티엘의 예상대로 악몽에서 지옥을 보았던 존은 그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