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16


* 일리야솔로


맨프엉 전력주제 : 잠옷

w. Edyie



  거추장스럽다. 솔로는 너무도 당당하게 대답하는 일리야의 태도에 잠시 한숨을 내쉴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잠옷이라고 딱 정해진 옷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폴레옹 솔로는 잘 때에는 항상 가벼운 차림을 고수했다. 직업 특성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였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움직이는 그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편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시간을,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해가며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일리야는 솔로와 정반대되는 생각과 옷차림을 내보였다.

  일리야 쿠리야킨은 임무 중 별 다른 일이 없는 날에는 그의 긴 목을 덮는 터틀넥 차림으로 그대로 자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일 때문에 긴장감이 감도는 밤에는 홀스터까지 착용한 채로 침대에 눕는 경우도 있었다. 치밀하다 못해 바짝 날이 선 모습에 솔로가 이마를 짚으며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설명했지만 일리야는 끝끝내 차림새를 고집했다. 다른 층에 위치한 방으로 돌아간 솔로는 목욕가운을 걸친 채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총을 두고 잠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 날 밤은 다행스럽게도 작은 소동 하나 없이 지나갔기 때문에 일리야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그래도 일리야는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고집을 꺾은 적은 없었다. 솔로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리야가 1년 365일을 모두 꽁꽁 싸맨 채로 잠드냐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임무때야 따로 움직여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각방신세였지만 본부로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얘기가 달라졌다. 일리야가 솔로의 집에 찾아오거나, 솔로가 일리야의 집에 찾아간 날이면 일리야는 '무척이나' 가벼운 차림새로 잠이 들었다. 임무 중엔 어떻게 잠들었나 싶을 정도로 속옷만 간신히 챙겨입거나 나신인 상태로 맞이하는 아침이 많았다. 몇 번을 되짚어보아도 꽤나 심각한 간극이었다.


  오늘도 일리야가 가벼운 차림으로 일어난 아침 중에 하나였다. 저녁식사를 이유 삼아 솔로의 집에 들렀던 일리야는 자연스럽게 솔로와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 먼저 일어나 간밤의 흔적을 눈으로 훑던 솔로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어나게, 페릴. 곧 정오야." 한 손으로 머리 위에 얹힌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던 솔로가 다른 손을 뻗어 일리야의 맨팔을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도 평온한 얼굴로 잠들었던 일리야는 그제야 미간을 찡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누워있던 몸을 부스스 일으키자 흘러내린 이불 사이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 드러났다. 일리야는 느리게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그대로 이불에서 벗어나 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솔로는 그 모습을 눈으로 쫓다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옷을 다 차려입은 일리야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서 브런치라 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식사를 챙겼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홍차를 마시는 일리야를 찬찬히 바라보던 솔로가 불쑥 말을 걸었다.


  "일리야."

  "말해라, 카우보이."

  "자네, 일할 때랑 쉴 때랑 잠옷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에 일리야는 읽던 신문을 반으로 접어내리고 그의 파트너와 얼굴을 마주했다. 일리야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잠옷은 거추장스럽다." 대답을 마친 일리야는 다시 원래대로 신문을 펴들었다.

  팔랑이는 신문 너머에 남겨진 솔로는 말을 삼켰다. 허. 어련하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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