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작을 볼 수 있는 주소는 이 쪽 -> 이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사라진 모양입니다...ㅠㅠㅠㅠㅠ
+ 뱀파이어&신부 두 소재 다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뱀파이어만 쓴 분량까지 올립니다.
+ 합작을 열어주신 스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Lancelot/Percival
침묵
w. Edyie
퍼시벌은 갑작스레 찾아든 기척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그는 재빨리 상체만 일으켜 움직임이 느껴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채 사그라들지 않은 햇볕 탓에 퍼시벌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나서야 시야를 되찾았다. 그의 잠을 방해한 불청객은 여유롭게 창가에 서서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퍼시벌의 표정은 반대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세상에, 퍼시벌. 자네 취향이 독특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한데."
"그런 말 하려고 찾아왔으면…."
"지금 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거든."
아슬아슬하게 그늘과 햇볕의 경계에 서 있던 제임스는 말을 끊으며 퍼시벌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퍼시벌이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허공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늘에 숨어있던 하얀 손이 주홍빛 저녁 햇살과 닿자마자 순식간에 살이 타들어갔다. 고약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시벌에게 덮쳐올 때까지도 제임스는 그저 표정의 변화 없이 마주친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오히려 놀란 쪽은 퍼시벌이었다. 퍼시벌은 눈을 부릅뜨더니 햇살을 가로질러 제임스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움직인 탓에 둘은 되는대로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어댔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둘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뒹군 자세 그대로 늘어진 제임스와 달리 퍼시벌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누운 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제임스는 느긋하게 자신을 붙든 퍼시벌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칠 뿐이었다. 그 바람에 퍼시벌의 시선이 짧은 순간 빗겨져 나갔다. 그는 시선 끝에 걸린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정신 나갔어?' 그렇게 외치려던 퍼시벌은 운도 떼지 못한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옷깃을 쥔 퍼시벌의 손도, 그 위에 올려진 제임스의 손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타들어간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의지나 고통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상이 그의 기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퍼시벌은 잠시 멈추었던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임스는 일그러진 퍼시벌의 손등과 표정을 잃은 얼굴을 번갈아보다 고개를 숙였다. 제임스의 입술은 녹아내린 상처를 피해 퍼시벌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고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퍼시벌은 진득하게 닿는 시선을 피해 눈꺼풀을 감아내렸다. 그는 그대로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쫓아오는 제임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퍼시벌은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제임스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그를 보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늘 이런 패턴이었다. 제임스는 언제나 대답을 원하는 눈빛이었지만 퍼시벌은 그 때마다 대답을 미루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제임스가 무엇을 묻는 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가볍고 시끄러운 사람마냥 굴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말을 아끼는 제임스의 성격을 알았기에 일찍이 직접 물을 생각마저 접었다.
때때로 '어쩌면, 어쩌면 오늘은.' 하는 생각이 함께 해온 오랜 세월 사이에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퍼시벌은 그 때마다 물어보지 못했다. 할 말은 입 안에 너무 오래 담아두고 있으면 잊어버리기 쉬웠다. 그는 이미 자신이 물었어야 할 질문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퍼시벌은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생각 탓에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입은 열었으나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이 방향을 찾는동안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하아. 짤막한 한숨이 뒤엉킨 생각들 사이를 휘젓고 내뱉어졌다.
그제야 제임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치는 바람만큼이나 부드러운 동작으로 일어선 그는 제 옷 매무새보다도 퍼시벌을 먼저 챙겼다. 제임스는 손을 뻗어 흐트러진 퍼시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쓸어넘겼다. 퍼시벌은 고개를 들고 제임스와 마주보았다. 슬쩍 휘어진 눈꼬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퍼시벌은 마침내 생각의 방황을 마치고 제가 해야할 질문을 골라냈다.
"제임ㅅ…."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퍼시벌의 턱을 어루만지던 제임스가 그대로 그를 끌어당겼다. 커다랗게 떠진 퍼시벌의 눈에는 한순간 제임스만이 가득 들어찼다. 코 끝을 스치는 감촉을 끝으로 퍼시벌은 눈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제임스의 입술이 겨우 입을 뗀 퍼시벌의 입술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새어나왔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결국 퍼시벌은 또 다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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