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Kingsman'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0.03 란시벌 크리스마스 합작
  2. 2015.04.18 [Kingsman] 란슬롯퍼시벌
  3. 2015.04.11 [Kingsman] 해리에그시
  4. 2015.03.14 [Kingsman] 랜슬롯퍼시벌 2

+ 합작을 볼 수 있는 주소는 이 쪽 -> 이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사라진 모양입니다...ㅠㅠㅠㅠㅠ

+ 뱀파이어&신부 두 소재 다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뱀파이어만 쓴 분량까지 올립니다.

+ 합작을 열어주신 스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Lancelot/Percival

침묵

w. Edyie


  퍼시벌은 갑작스레 찾아든 기척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그는 재빨리 상체만 일으켜 움직임이 느껴진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채 사그라들지 않은 햇볕 탓에 퍼시벌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나서야 시야를 되찾았다. 그의 잠을 방해한 불청객은 여유롭게 창가에 서서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퍼시벌의 표정은 반대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세상에, 퍼시벌. 자네 취향이 독특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한데."

"그런 말 하려고 찾아왔으면…."

"지금 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거든."


  아슬아슬하게 그늘과 햇볕의 경계에 서 있던 제임스는 말을 끊으며 퍼시벌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퍼시벌이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허공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늘에 숨어있던 하얀 손이 주홍빛 저녁 햇살과 닿자마자 순식간에 살이 타들어갔다. 고약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시벌에게 덮쳐올 때까지도 제임스는 그저 표정의 변화 없이 마주친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오히려 놀란 쪽은 퍼시벌이었다. 퍼시벌은 눈을 부릅뜨더니 햇살을 가로질러 제임스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움직인 탓에 둘은 되는대로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요란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어댔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둘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뒹군 자세 그대로 늘어진 제임스와 달리 퍼시벌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누운 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제임스는 느긋하게 자신을 붙든 퍼시벌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칠 뿐이었다. 그 바람에 퍼시벌의 시선이 짧은 순간 빗겨져 나갔다. 그는 시선 끝에 걸린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정신 나갔어?' 그렇게 외치려던 퍼시벌은 운도 떼지 못한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옷깃을 쥔 퍼시벌의 손도, 그 위에 올려진 제임스의 손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타들어간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의지나 고통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상이 그의 기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퍼시벌은 잠시 멈추었던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임스는 일그러진 퍼시벌의 손등과 표정을 잃은 얼굴을 번갈아보다 고개를 숙였다. 제임스의 입술은 녹아내린 상처를 피해 퍼시벌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고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퍼시벌은 진득하게 닿는 시선을 피해 눈꺼풀을 감아내렸다. 그는 그대로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쫓아오는 제임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퍼시벌은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제임스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그를 보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늘 이런 패턴이었다. 제임스는 언제나 대답을 원하는 눈빛이었지만 퍼시벌은 그 때마다 대답을 미루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제임스가 무엇을 묻는 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가볍고 시끄러운 사람마냥 굴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말을 아끼는 제임스의 성격을 알았기에 일찍이 직접 물을 생각마저 접었다.

  때때로 '어쩌면, 어쩌면 오늘은.' 하는 생각이 함께 해온 오랜 세월 사이에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퍼시벌은 그 때마다 물어보지 못했다. 할 말은 입 안에 너무 오래 담아두고 있으면 잊어버리기 쉬웠다. 그는 이미 자신이 물었어야 할 질문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퍼시벌은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생각 탓에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입은 열었으나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이 방향을 찾는동안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하아. 짤막한 한숨이 뒤엉킨 생각들 사이를 휘젓고 내뱉어졌다.

  그제야 제임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치는 바람만큼이나 부드러운 동작으로 일어선 그는 제 옷 매무새보다도 퍼시벌을 먼저 챙겼다. 제임스는 손을 뻗어 흐트러진 퍼시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쓸어넘겼다. 퍼시벌은 고개를 들고 제임스와 마주보았다. 슬쩍 휘어진 눈꼬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퍼시벌은 마침내 생각의 방황을 마치고 제가 해야할 질문을 골라냈다.


"제임ㅅ…."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퍼시벌의 턱을 어루만지던 제임스가 그대로 그를 끌어당겼다. 커다랗게 떠진 퍼시벌의 눈에는 한순간 제임스만이 가득 들어찼다. 코 끝을 스치는 감촉을 끝으로 퍼시벌은 눈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제임스의 입술이 겨우 입을 뗀 퍼시벌의 입술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새어나왔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결국 퍼시벌은 또 다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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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킹스맨 전력 60분 [주제 : 선물]

w. Edyie



  빼애액. 퍼시벌은 조용한 집 안을 한바탕 휘저어 놓으며 찾아든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벌써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반쯤 눈을 뜬 채로 누가 찾아왔을 지 고민하다가 잡상인 혹은 집을 잘못 찾은 사람이려니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이어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빼애액. 투박하고 오래되어 곱지 않은 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퍼시벌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 불청객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자, 빨간 차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량의 옆에 스티커로 깔끔하게 부착된 표식은 퍼시벌도 이미 알고 있는 종류였다. 그리고 그의 문 앞에 선 남자는 경쾌하게 인사를 하더니 받침이 끼워진 종이 한 장과 펜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아, 오늘은 계셔서 다행이네요. 저번에 왔을 때 안 계셔서 허탕쳤는데. 혹시 우편함에 남긴 거..."

  "미안하지만 이 소포 누가 보낸 거죠?"


  퍼시벌은 거기까지 듣다말고 말허리를 잘랐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소포를 받을 예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금 받아야 할 물건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집배원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더니 작은 상자를 꺼내 그 위에 적힌 이름을 빠르게 읽어주었다. 란슬롯이라는 분한테서 온 거네요. 혹시 모르는 분이세요? 집배원은 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렇게 덧붙였다.

  란슬롯.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퍼시벌의 머릿속엔 두 명의 란슬롯이 떠올랐다. 전대 란슬롯인 제임스와 그가 추천했던 후보이자 현재 란슬롯 칭호를 담당하고 있는 록산느가 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둘 중 굳이 더 먼저 떠오른 쪽을 고르자면 제임스였다. 록산느가 란슬롯으로서 모자란 점이 있지는 않았지만, 17년이란 세월동안 그와 함께한 란슬롯이 제임스였던 만큼 그가 먼저 떠오른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전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그에게 무언가를 보낼 수 있을 리 없고, 아마 록산느에게서 온 소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집배원이 다음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받으시는 분 성함은, 퍼시 맞으신가요?"


  Percy. 그가 이 곳에 머무르며 사용하는 가명이 아니었다. 퍼시벌이라는 코드네임 대신에 그를 그렇게 부르던 사람은 킹스맨 중에서도 딱 한 사람 뿐이었다. 제임스.

  그는 확실해진 발신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집배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소포를 내밀었다. 퍼시벌이 서명을 마치고 내민 종이와 상자를 바꿔든 집배원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밝게 인사를 남기고는 차에 올라탔다. 퍼시벌은 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로 걸어돌아오는 내내 그의 손에 올려진 가벼운 상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누군가 제임스를 사칭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킹스맨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한동네에 사는 이웃들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이런 식으로 부를 수는 없었다. 제임스가 그에게 보낸 물건은 무엇일까. 궁금해할 시간에 상자를 열어보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퍼시벌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퍼시벌은 가져온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상자를 열어보았다. 칼날이 옅게 지나간 자리가 갈라지고 상자날이 펼쳐지자 다시 까만 상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쓸데없이 세세함을 쏟은 포장에 한숨을 쉬며 작은 상자를 연 퍼시벌은 물건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까맣기도, 햇볕을 받아 푸르게도 보이는 몸체를 지닌 만년필이 상자 안에 고이 뉘어져있었다. 퍼시벌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 만년필을 손에 쥐어보았다. 전체적인 무게도 무겁지 않았고, 뚜껑을 열어보니 퍼시벌이 자주 쓰던 세필에 가까운 펜촉이 자리했다. 그 필기구 하나는 완벽하게 퍼시벌에게 맞춰진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퍼시벌은 만년필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다시 원래 있던 상자 안에 돌려놓았다.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퍼시벌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더 선호했다. 안경을 통해 통신하는 건 어쩔 수 없다해도 웬만한 정보전달은 잉크를 적신 펜촉으로 적고, 정보력이 다한 흔적은 태워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킹스맨의 요원들 대다수가 그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퍼시벌은 고집을 접고 안경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았다. 제임스만이 아무런 반문이나 싫은 내색없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었다. 그 부분에 오히려 궁금증을 느낀 퍼시벌이 합동임무 때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나도 그게 좋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한 거지.' 란슬롯-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는 오히려 퍼시벌의 재킷 안 쪽에 잠들어 있던 만년필을 꺼내보라고 하더니 펄쩍 뛰며 요란을 떨었다.


  '킹스맨 로고가 박힌 만년필이라니. 센스가 바닥이 아니고서야 자네가 이럴 순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센스라서 미안하게 됐군.'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새로 하나 사는 건 어때. 살벌하게 독 들어있는 거 말고.'

  '만년필 이외의 기능을 상실하고 나면 생각해보지.'

  '...퍼시벌. 자네 그 독 별로 안 쓰잖아?'


  퍼시벌은 거기서 대꾸를 멈췄다. 제임스가 뭐라고 말을 이었지만 흘리듯 들었기에 기억 속에 남지 않았다. 둘은 임무 중이었고, 퍼시벌은 흐트러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란슬롯의 몫까지 집중하느라 다른 데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 임무가 란슬롯-제임스의 죽음 이전에 마지막 합동임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언제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이후 바로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을 후보생 추천이 이어졌고, V데이라는 홍역을 치른 뒤였다. 정신없었던 과정들이 정리된 이후에야 킹스맨 요원들은 쉴 수 있었다. 퍼시벌에게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시 잠들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려한 금색 필체로 각인이 들어간 뚜껑을 보는 순간 퍼시벌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익숙한 필체가 눈에 박히듯 파고들었다. To Percy. 햇볕을 받은 글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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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 스포주의

- 사망소재 주의



킹스맨 전력 60분 [주제 : 시]

w. Edyie



  해리 하트는 눈 앞의 광경이 슬로우모션처럼 한 프레임씩 천천히 넘겨지는 모양을 눈에 담았다.

  그건 마치 그가 발렌타인의 총에 겨누어졌을 때와 같은 속도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속도. 그 때도 해리는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 마음에게 여유를 주는 시간처럼 짧은 순간이 그를 느리게 휘돌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이마 위, 눈썹 쪽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았다. 어찌되었건 간에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왔고 에그시는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이해주었다. 오히려 관계를 되돌리는데 상처만큼이나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은 해리 본인이었다.

  흉터와 함께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던 죽음의 공포가 선명하고 뚜렷하게 그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해리는 자신이 킹스맨에 속하기 이전부터 그 두려움을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뎌진 칼날을 벼리면 다시 예리해지듯, 쉬이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고개를 쳐들었다. 죽음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동안 해리는 자신이 잃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돌아온 뒤에도 그 생각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해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에그시와의 관계를 다시 쌓는 일이었다. 둘은 멀지도, 그러나 이전만큼 가깝지는 않은 사이가 되었다. 해리에게 있어 이 거리는 상실할 수 있을 만한 관계에 대한 보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에그시는 해리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거리를 좁혀왔고, 해리는 에그시의 당돌하다 못해 저돌적인 자세를 피하기만 했다. 그리고 바로 이번 임무 직전에 에그시는 기어코 그를 찾아와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녀와서, 얘기해요. 제대로 얘기 좀 했으면 해요. 해리.'


  에그시는 해리가 대답을 내놓기도 전에 뒤로 돌아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 해리가 에그시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건 불과 30분 전의 일이었다. 다급하게 멀린을 부르는 소리에 안경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니 난장판이 된 전투현장 사이에 에그시가 끼어있었다. 그는 숨이 턱 밑까지 올라찬 톤으로 열심히 멀린을 불렀다. 멀린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계속 불렀던 것으로 보아, 안경도 일부분 훼손된 모양이었다. 에그시는 몇 번 연이어 안경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짧게 욕을 내뱉으며 말을 바꿨다. 멀린, 백업이 필요해ㅇ... 미처 끝마치지 못한 말을 비집고 총성이 울려퍼졌다. 화면이 흔들리다가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영상이 보인 뒤로는 구둣발 소리와 총성만 번갈아가며 들려왔다.

  해리는 에그시가 백업이라는 단어를 외친 순간부터 이미 헬기에 올라탄 상태였기 때문에 요원들 중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린이 해리에게 뭐라 다그치는 소리도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해리의 머릿속에는 온통 다녀와서 얘기하자던 에그시의 말만 떠돌았다. 그리고 해리가 정리된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꽤나 지독했다. 언제 주웠는 지 안경을 한 손에 꼭 붙들고 쓰러져있던 에그시가 해리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한 금발은 피가 아무렇게나 엉겨붙어 있었고 바닥을 짚은 손이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에그시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해리를 마주보았다.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해리가 다급하게 다가가 에그시에게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해리의 눈앞에 다시금 느릿한 광경이 펼쳐졌다. 에그시는 그가 뻗은 손 사이로 몸을 무너뜨렸고, 해리는 에그시의 몸을 받아 안았다. 에그시는 불편한 지 팔을 뒤척이더니 해리의 목에 손을 두르고 귓가에 천천히 단어를 불어넣었다.


  "해리. 왔어,요?"

  "에그시."


  대답 대신 해리가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는 에그시가 답이 없었다. 꼭 끌어안은 탓에 맞닿은 가슴에 작은 박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에그시의 손에 쥐어있던 안경이 해리의 등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해리는 눈을 질끈 내려감았다. 그가 지금까지 피하고 있던 두려움 대신 진득한 감정이 내려앉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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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킹스맨 전력 60분 [주제 : 화이트데이]

w. Edyie




  랜슬롯은 무릎 가에 닿는 폭신한 촉감 탓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건조한 눈을 두어번 깜빡거리고는 자신의 무릎에 닿은 게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의 바로 앞 쪽에서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동양인 소녀가 느릿하니 일어나고 있었다. 랜슬롯은 난기류 때문에 똑바로 일어나기 버거워하는 소녀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야지, 꼬마숙녀님."


  소녀는 랜슬롯의 목소리에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더니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어지면서 살짝 들린 치마 끝을 야무지게 털어낸 소녀는 얼떨결에 맞잡은 손을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없이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렸다. 랜슬롯의 눈에는 그런 소녀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다. 그는 아이가 다시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비행기가 흔들릴 때는 자리에 있어야지. 돌아다니다가 다쳐요."

  "......"

  "자리까지 돌아갈 수 있겠니? 못 찾겠으면 아저씨가 도와줄게."


  랜슬롯은 혹여 아이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최대한 느릿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아이는 여전히 큰 눈을 깜빡이며 입술만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는 차분하게 소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싶더니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 랜슬롯의 앞자리 팔걸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치마 옆 쪽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주먹을 쥐고 랜슬롯에게 내밀었다. 눈치 빠른 랜슬롯이 자그마한 주먹 아래로 한 손바닥을 펴보이자 소녀는 쥐고있던 물건을 그의 손으로 툭 떨어뜨렸다. 아이가 쥐기엔 조금 크고, 랜슬롯의 손엔 작은 막대사탕이 손바닥 위를 빙그르르 굴렀다. 랜슬롯이 이게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소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Thank you."라는 말을 덧붙이고 종종걸음으로 비행기 좌석을 따라 움직였다.

  비닐포장에 '딸기&크림맛'이라고 적힌 막대사탕을 빙글 돌려보던 랜슬롯은 소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이코노미석에 타게 생긴 신세라며 한탄을 늘어놓던 그였지만, 이런 귀여운 사건을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막대사탕을 양복 재킷 주머니에 넣으며 이걸 누구에게 줄까 고민했다. 사실 마음 먹은 순간, 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므로 그가 어떻게 반응할 지 잠깐 그려본 게 전부였다. 그리고 잠시 웃음기 넘치는 얼굴로 앉아있던 랜슬롯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대를 고쳐쓰고 잠을 청했다.

  그는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소녀에게서 받은 사탕이 소녀의 나라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기념사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랜슬롯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날짜를 확인했다. 3월 14일. 아직 늦지 않았다. 그 날, 랜슬롯이 본부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탕의 의미를 그대로 담아서 줄 수 있는 사람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   *   *   *




  퍼시벌은 무심코 책상 서랍에 손을 대었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그는 이 안에 들어있는 물건 하나하나를 외우고 있었다. 그가 자주 쓰는 잉크, 엽서 3장, 금장 장식이 들어간 라이터, 막대사탕 하나. 몇 개 되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그는 굳이 서랍을 열지 않아도 물건의 위치를 알 만큼 선명하게 기억했다. 잠시 서랍 앞에서 갈 곳을 잃었던 손은 곧 망설임 없이 서랍을 열었고, 안에 있던 까만 잉크병을 잡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걸 쓰면 될 거네."


  랜슬롯. 그렇게 덧붙이려던 퍼시벌의 눈에 작은 사탕이 들어오자 이번에는 말이 허공을 떠돌았다. 그에게 이 막대사탕을 주었던 사람도 랜슬롯이었다. 이제 정확히 말하자면 전대 랜슬롯이었지만. 퍼시벌은 사탕을 받아서 서랍에 넣은 뒤로 단 한 번도 저 사탕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임무를 하느라 거의 집에 붙어있지 않았던 그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시간이 없었을 뿐더러, 전대 랜슬롯의 죽음 이후로 정신없던 일정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전대 랜슬롯과 함께 기억에서 지우려던 그의 노력이 있기도 했다. 퍼시벌은 잉크병이 빠진 틈을 따라 굴러나온 사탕에 가만히 손을 대보았다. 단 게 싫다고 하던 그에게 억지로 쥐어주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건 내 마음이야, 퍼시벌.'

  'Nonsense.'

  '나도 몰랐는데, 글쎄, 3월 14일에 사탕을 주는...'


  "퍼시벌."


  그가 상념에 젖어있는 사이, 서류를 마무리 지은 그의 파트너가 말을 걸었다. 잉크 뚜껑을 닫아 가볍게 내미는 손 끝이 퍼시벌의 시선 끄트머리에 닿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파트너를 제대로 마주보았다. 그가 추천했던 랜슬롯의 후계자가 어엿한 기사가 되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록산느 모튼, 랜슬롯은 잠시 그런 퍼시벌의 상태를 살피더니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퍼시벌은 사탕을 한 쪽으로 밀어내고는 다시 잉크병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는 서랍이 닫히는 순간까지 사탕에 시선을 두다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사이 그는 다시 평소의 퍼시벌로 돌아왔다. 출발하지. 짧은 말을 남긴 퍼시벌이 랜슬롯을 지나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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