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inion Fan Fiction

고요한 낙원 上

w. Edyie



  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브리엘은 종전의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선택받은 자. 알렉스 레넌이 모든 일을 마치고 지쳤지만 안도한 얼굴로 천국을 올려다보았을 때, 아버지는 작은 아이의 부름에 대답을 주셨다.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아닌 작고 연약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가 아버지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을 멀거니 쳐다보던 가브리엘이 목적을 잃은 분노를 쏟기도 전에 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지상에 내려와 있던 모든 천사들의 머릿속에 잔잔하고도 선명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돌아와라.' 어떤 거추장스런 단어도 붙지 않은 짧은 한 마디에는 쉽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었다. 정말 아버지가 맞는 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처럼 패배를 부정하던 천사들마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다 차지하고 있던 인간의 몸에서, 혹은 새카만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가브리엘은 변화하는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미처 바로잡을 틈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났다. 시작과 같이 아버지의 손 끝에서 갈무리 되어 종지부를 찍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몰랐다. 가브리엘은 올려다보던 자세 그대로 눈꺼풀을 내려감았다.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종전을 축하하듯 쏟아져내렸다. 따스하게 내려는 햇살은 점차 범위를 넓히더니 가브리엘의 뺨에도 와닿았다. 온기가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에 눈을 뜨자 시선 끝에 제 쌍둥이 형제의 얼굴이 들어왔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모든 전쟁을 함께 했던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뜻을 달리 했었다. 그리고 미카엘의 판단이 옳았다. 가브리엘은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형제가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작게 중얼거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알렉스와 대화를 나누던 미카엘은 시선을 옮겨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다. 차분한 시선이 얼굴에 날아들자 오히려 가브리엘은 고개를 돌려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았다. 비스듬하게 숙여진 고개 위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끝났다, 가브리엘."

  "아니, 나는..."

  "가브리엘."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을 자르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검을 쥔 그의 손을 느리게 밀어냈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어깨 아래로 손을 뻗어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마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다는 듯 다독이는 손이 한없이 다정했다. 가브리엘은 그제야 눈을 감고 손아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검이 메마른 땅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자 미카엘이 낮게 웃었다. 맞닿은 옆얼굴이 떨림을 따라 간지럽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침묵하던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가브리엘을 향한 말이 아닌 기도였다. 아버지께 올리는 말이 미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미카엘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가브리엘은 크게 동요했다. 그는 돌아오는 둘 사이의 유대와 기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다급히 팔을 풀고 형제의 어깨를 밀어내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아. 미카엘은 형제를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가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돼. 가브리엘은 통제를 잃고 떨리는 두 손으로 미카엘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선명한 햇살 아래, 진녹빛 눈동자는 흐리게 변했고 가브리엘은 형제의 손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카엘은 그런 가브리엘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조심스럽게 뻗은 손이 머리를 지나 슬픔으로 웅크린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돌아가자, 형제여."


Posted by Edy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