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w. Edyie



1.

뭐? 내가 죽는 꿈을 꿨다고?

솔로는 그렇게 되물으며 슬쩍 눈꼬리를 접었다. 일리야는 웃음기가 잔뜩 서린 눈동자와 마주하다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이 주제는 심각하고 웃을 수 없는 문제인데 솔로에게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애써 얘기하지 않으려던 이야기를 끄집어낸 장본인은 심각하게 잠긴 일리야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기어코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난 또 무슨 심각한 얘기라고."

"웃지 마라. 심각한 얘기가 맞다."

"페릴, 꿈은 꿈일 뿐이야. 난 여기 살아있고 자네 옆에 있어."


툴툴거리다가 조금 화가 나 홱 돌아보았더니 돌아오는 말이 부드럽기 그지 없다. 일리야가 솔로와 함께 일을 하고, 같이한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지만 이런 갑작스런 공격엔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일리야는 뭐라 대꾸하려 입을 열었다가 허- 하고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일을 생각해보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리야 쿠리야킨과 나폴레옹 솔로를 두고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적당히 몸을 사릴 줄 아는 솔로보다야 위험에 부딪히는 일이 많은 일리야가 위험부담이 더 컸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항상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는 법이었다.

일리야는 서늘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솔로를 붙잡고 강조했다. 조심해라, 카우보이. 그러면 솔로는 슬쩍 시선을 마주하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야를 안심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지만 효과는 썩 괜찮았다. 꿈에서 보았던 얼굴 위로 그가 좋아하는 표정이 덧씌워졌다.


일리야가 꿈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눈 앞에서 솔로를 잃었다. 방법은 정해져있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총을 맞고 쓰러졌고, 어떤 날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자신에게 뻗어지는 손을 잡지 못했다. 또 다른 날에는…….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일리야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악몽을 꾸었다. 절반은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내용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솔로에 관한 내용이었다.



2.

폭발음이 들렸다.

일리야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재빨리 눈을 돌렸다. 천장이 날아간 건물이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리야와 개비가 솔로를 백업하기 위해 향하고 있던 장소였다. 건물 안에는 솔로가 붙잡혀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 솔로가 살아남을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터지는 폭음이 점점 건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일리야가 손을 잘게 떨었다. 곁에 있던 개비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어떠한 말 대신에 고개를 저으며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일리야는 눈을 사납게 뜨고 그녀를 뒤로 한 채, 건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일리야의 외침이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울려퍼졌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3.

모두가 했던 예상대로 그의 묘비 앞에 모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웨이벌리와 개비, 일리야가 전부였다. 한 때 유명했던 요원을 품은 관이 땅 속으로 사라지자 까만 정장차림으로 모여있던 인파는 걸음을 돌렸다. 묘비가 세워질 때까지 자리에 남은 이들은 시작을 함께 한 셋이었다. 개비는 발갛게 된 눈으로 잿빛 비석을 쳐다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혼자 조금 떨어져 서있던 일리야에게 다가오더니 늘어진 일리야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때까지 가만히 멈춰있던 손가락이 온기에 놀라 슬쩍 떨리기 시작했다.

"일리야." 개비는 일리야를 부르며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탓에 작은 어깨가 잘게 떨리는 모양이 눈에 들어왔지만 일리야는 멀거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에게 개비를 위로해줄 만한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개비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소리없이 눈물을 떨어트렸다. 결국 그녀는 하고 싶던 말을 삼키고서 한 손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아낸 후에야 일리야를 끌어안았다.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굽혀 높이를 맞춰주는 일리야의 귓가에 개비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먼저 갈게요. 생각 정리하고 와요."


개비는 일리야에게서 손을 떼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웨이벌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낮게 한숨을 쉬었다. 웨이벌리는 수많은 위로의 말 대신 하얀 꽃 한 송이를 묘비 앞에 내려두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얀 꽃잎은 눈을 시리게 만들어 일리야는 꽃잎을 응시하다말고 눈꺼풀을 내려감았다. 웨이벌리가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쳤지만 감긴 눈은 그대로였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일리야는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허벅지 위에 올려진 손가락만이 불안한 박자로 까딱였다.

일리야는 눈을 뜬 순간 마주해야 할 현실이 감당할 정도인지 가늠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길 바랐던 장면이 펼쳐지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슬픔이 쏟아져나왔다. 비석 아래로 이제 막 갈무리 된 흙이 불어오는 바람에 버석하니 흩날렸다. 그보다 더 안쪽에 솔로가 있었다. 일리야는 폭발 잔해에서 겨우 찾아내었던 그을린 시신이 떠올라 고개를 털었다.

꿈은 꿈일 뿐이야. 웃음기를 머금었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 때 솔로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일리야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일리야는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떼었다.


"나폴레옹." 새어나간 목소리가 형편없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너에게 꿈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말을 마친 일리야가 비석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 끝에 서늘한 감각이 맴돌자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폴레옹 솔로. 일리야는 새겨진 이름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깰 수 없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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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on Fan Fiction

고요한 낙원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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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브리엘은 종전의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선택받은 자. 알렉스 레넌이 모든 일을 마치고 지쳤지만 안도한 얼굴로 천국을 올려다보았을 때, 아버지는 작은 아이의 부름에 대답을 주셨다.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아닌 작고 연약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가 아버지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을 멀거니 쳐다보던 가브리엘이 목적을 잃은 분노를 쏟기도 전에 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지상에 내려와 있던 모든 천사들의 머릿속에 잔잔하고도 선명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돌아와라.' 어떤 거추장스런 단어도 붙지 않은 짧은 한 마디에는 쉽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었다. 정말 아버지가 맞는 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처럼 패배를 부정하던 천사들마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다 차지하고 있던 인간의 몸에서, 혹은 새카만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가브리엘은 변화하는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미처 바로잡을 틈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났다. 시작과 같이 아버지의 손 끝에서 갈무리 되어 종지부를 찍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몰랐다. 가브리엘은 올려다보던 자세 그대로 눈꺼풀을 내려감았다.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종전을 축하하듯 쏟아져내렸다. 따스하게 내려는 햇살은 점차 범위를 넓히더니 가브리엘의 뺨에도 와닿았다. 온기가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에 눈을 뜨자 시선 끝에 제 쌍둥이 형제의 얼굴이 들어왔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모든 전쟁을 함께 했던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뜻을 달리 했었다. 그리고 미카엘의 판단이 옳았다. 가브리엘은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형제가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작게 중얼거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알렉스와 대화를 나누던 미카엘은 시선을 옮겨 눈을 마주치더니 천천히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다. 차분한 시선이 얼굴에 날아들자 오히려 가브리엘은 고개를 돌려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았다. 비스듬하게 숙여진 고개 위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끝났다, 가브리엘."

  "아니, 나는..."

  "가브리엘."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말을 자르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검을 쥔 그의 손을 느리게 밀어냈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어깨 아래로 손을 뻗어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마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다는 듯 다독이는 손이 한없이 다정했다. 가브리엘은 그제야 눈을 감고 손아귀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검이 메마른 땅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자 미카엘이 낮게 웃었다. 맞닿은 옆얼굴이 떨림을 따라 간지럽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침묵하던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가브리엘을 향한 말이 아닌 기도였다. 아버지께 올리는 말이 미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미카엘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가브리엘은 크게 동요했다. 그는 돌아오는 둘 사이의 유대와 기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다급히 팔을 풀고 형제의 어깨를 밀어내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아. 미카엘은 형제를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가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돼. 가브리엘은 통제를 잃고 떨리는 두 손으로 미카엘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선명한 햇살 아래, 진녹빛 눈동자는 흐리게 변했고 가브리엘은 형제의 손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카엘은 그런 가브리엘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조심스럽게 뻗은 손이 머리를 지나 슬픔으로 웅크린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돌아가자,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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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From U.N.C.L.E

잠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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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야!"


  일리야는 귀가 먹먹하도록 울리는 총성 사이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잡아냈다.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확인하려 몸을 반 바퀴 돌리자 익숙한 뒷모습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나폴레옹 솔로는 일리야에게서 등을 보인 채 짧은 순간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의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 숨소리가 아주 천천히 일리야의 귓가를 맴돌다 사라졌다. 그리고 일리야가 왜 그러느냐고 채 묻기도 전에 상황은 다시 급박한 현실로 돌아왔다.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 살갗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일리야를 막아선 솔로가 무너져내렸다. 일리야는 눈을 크게 떴다. 솔로의 총을 쥔 손과 고개는 여전히 앞을 향하고 있었지만 다른 쪽 손은 순식간에 뚫려버린 재킷과 그 아래로 붉게 물드는 상처를 덮어내렸다. 그는 쓰러지면서도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움직였다. 쏘아져나간 총알은 솔로를 빗맞추었던 자의 어깨를 꿰뚫었다. 같은 방향을 응시하던 일리야가 눈을 번뜩이며 총구를 옮겼다. 어둠 속에서 길게 뻗은 팔에 연장선마냥 이어진 총구가 반짝이기 무섭게 불꽃을 뿜어냈다. 뒤를 이어 무서운 속도로 연달아 들리는 총성에 솔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일리야가 그러했듯 반바퀴 정도 파트너를 향해 몸을 돌렸다.

  피를 쏟는 옆구리가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토해내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의도치 않은 신음이 흘러나갔다. 다행히도-상황을 두고 말하자면- 관통상은 아니었다. 바람에 펄럭인 재킷과 그 안에 입은 베스트는 뚫렸지만 총알은 박히지 않고 스쳐지나간 상태였다. 요원생활을 하며 이런 총상을 입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지라, 솔로는 직감적으로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지혈하고, 상처만 제때 치료하면 아무 일 없을 부상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별개로 온 몸을 타고 저릿하게 흐르는 고통은 그가 조절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느리게 눈을 깜빡인 솔로가 고개를 들어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어둠을 엄폐물 삼아 숨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한 눈에 들어왔다. KGB의 유능한 요원이었던 파트너는 그가 찾아서 돌려주었던 시계를 찬 왼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탄창을 찾아내더니 오른손과 능숙하게 호흡을 맞추어 탄창을 갈아끼웠다. 빈 탄창은 어느 틈에 그의 등 뒤로 날아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일리야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한 상태였다. 단단히 화가 나셨군. 일자로 굳게 다물린 입술을 바라보던 솔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임무에서 돌아가면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솔로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다말고 시야에 걸리는 움직임에 고개를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일리야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어중간한 위치로 내리기를 반복했다. 탄창 갈아끼우기 임무를 완수한 일리야의 왼손가락이 그의 허벅지 근처에서 작게 달싹이고 있었다. 그제야 솔로는 시끄럽게 울리던 총성도 이제 이 쪽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능한 파트너 덕분에 이제 두 사람은 안전해졌지만 일리야는 더없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총을 내려두고 한 손으로 바닥을 짚은 솔로가 신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하게, 페릴."

  "……"


  일리야는 잠시 눈을 깜빡였을 뿐 총성을 멈추지 않았다. 왼손의 떨림 역시 여전했다. 솔로가 고개를 돌려 일리야의 시선 끝을 확인하자 아까 자신을 쏘았던 남자의 머리에 벌써 세 발째 총알이 박혀들고 있었다. 그의 목숨이 이미 끊어진 사실은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일리야는 갈 길 잃은 분노를 가감없이 뿜어냈다. 거기에 솔로의 목소리는 제대로 닿지 못했다. 갑자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솔로는 일리야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선 채로 비틀거리다 일리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솔로는 힘이 풀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너졌다. 일리야. 입술 사이로 아까보다 더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갔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일리야는 총성을 멈추고 솔로를 돌아보았다.


  "카우보이?" 일리야는 지겹도록 익숙한 별명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일리야의 손에 걸려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민첩하게 내밀어진 팔이 솔로의 어깨 사이로 밀어넣어졌다. 힘을 잃은 솔로의 몸이 그의 팔을 타고 그대로 품으로 떨어졌다. 솔로는 손으로 더듬으며 일리야의 목 뒤로 한 팔을 감다말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일리야가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솔로를 잠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솔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바르작거리던 움직임을 멈추고 일리야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손을 움직여 가볍게 일리야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일리야."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일리야는 어정쩡하게 뻗어있던 팔을 솔로의 등 뒤로 감았다. 상처부위에 스치기라도 할까 잔뜩 얼어붙은 손이 들키지 않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솔로는 푸스스 웃음을 흘리다가 상처부위가 아픈 지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일리야는 솔로에게 웃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가며 부드럽게 팔을 풀어냈다. 한 손으로 상처부위를 지혈하던 솔로는 일리야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등을 기댄 벽에서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었지만 그의 손을 잡은 다른 손이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솔로는 아득하게 들려오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으며 일리야와 마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웨이벌리가 현장수습을 위해 보낸 헬리콥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일리야는 헬기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확인하고 낮게 코웃음 쳤다.


  "지원군이라기엔 너무 늦었군."

  "진정해, 페릴. 난 지금 저 지원군이 무척이나 반갑거든."

  "그래서 더 늦었다는 소리다."

  "사실 늦었는 지도 난 잘 모르겠군. 정말 피곤해서 잠깐 잘 테니 뒷일을 부탁해."


  솔로는 맞잡은 손에 얽힌 손가락을 까닥여 일리야의 손등을 두드렸다. 아까와 같은 토닥임에 일리야가 그의 손등과 솔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솔로는 눈을 감았다. 정말로 길고도 피곤한 하루였던 탓에 간만에 푹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솔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대답없던 일리야는 솔로가 잠들기 바로 직전에서야 말을 건넸다.


  "Sleep t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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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on Fan Fiction

I'm here (for. 현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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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가브리엘은 주변 골목을 빠르게 눈으로 훑으며 소리쳤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지 벌써 한 시간째였다. 가브리엘은 모든 감각을 유대에 집중하며 길을 걸었다. 이러저리 고개를 돌리며 찾아 헤매던 가브리엘은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좋고. 모든 것이 평화로운 천국에서 가브리엘의 여유를 흔들어놓은 건 다름 아닌 하나 뿐인 그의 쌍둥이 형제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번번히 똑같이 구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장 급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머릿 속이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형제 덕에 뒤죽박죽 뒤엉켜 있었다. 감각이 공유될 거란 사실을 미카엘도 모르지 않을텐데 이 정도라면 앓아누울 정도는 아플 참이었다. 곤히 자고 있던 낮잠도 흘러들어온 감각 덕에 날려버린 채 헤매고 있건만 미카엘은 얼굴을 비추기는 커녕 오히려 평소보다 열심히 그를 피해다녔다. 미카엘의 고집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마다 가브리엘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아버지의 은총은 두 형제를 비롯해 모든 대천사들에게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였다. 조금씩 하사받은 능력과 물건 덕에 그들은 영생과 더불어 많은 혜택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은총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천사들은 은총을 쓸 때마다 작은 댓가를 치뤄야 했다. 미카엘의 경우에는 고통이었다. 은총을 사용한 만큼 그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럼에도 미카엘은 은총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다. 결과는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돌아왔다. 고통이 시작되면 미카엘은 방에 얌전히 누워있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몇 번 찾아다가 방에 옮겨다 놓을 적이 있을 정도로 그는 형제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했다. 요즘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또 가브리엘이 모르는 새에 은총을 쓴 모양이었다.

  가브리엘은 어지럽게 도는 감각과 또렷하게 보이는 시야를 동시에 바라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매번 겪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정신이 없으면 찾아가기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카엘, 차라리 그냥 기다려. 들을 리 없는 생각을 곱씹으며 가브리엘은 털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미카엘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는 지 미카엘의 목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아까보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을 따라 움직였다.


  "오, 미카엘."


  골목 끝을 벗어난 가브리엘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멈춰섰다. 광장. 하급 천사들부터 고위 천사들까지, 수 많은 천사들이 광장에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미카엘이 숨기에는 좋은 공간이었지만, 그를 찾고 있는 가브리엘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가브리엘은 멈춰선 채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천사들의 목소리에 묻혀 미카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기운 역시 느릿하니 가브리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아픈 형제와 숨바꼭질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가브리엘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그의 주변을 지나치던 하급 천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멈춰서더니 풀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위 천사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변화를 바라보다 가브리엘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흐름이 멈춘 광장에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소리가 울려퍼지다 멈춰섰다. 가브리엘은 얼른 소리가 난 쪽에서 가장 가까운 하급 천사의 눈을 빌려 주변을 확인했다. 긴 로브를 뒤집어쓴 미카엘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가브리엘은 허탈하게 웃으며 빙의를 풀었다. 미카엘에게 집중되어 있던 천사들의 이목이 한순간 풀리자 광장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가브리엘은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미카엘은 이미 그의 위치를 들킨 뒤였고 지금의 몸상태로는 달리지도 날지도 못할 게 뻔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카엘의 고통이 공명하듯 저릿하게 울려왔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털어내며 제 형제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카엘이 겨우 손으로 벽을 짚고 돌아간 골목을 돌자마자 다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 끝에 세워진 날개의 장벽이 그와 미카엘 사이에 버티고 있었다. 날개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면서도 제 주인의 고통 때문인지 이따금 흔들리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불어들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입구 쪽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날개 안 쪽에서는 미카엘이 두 팔로 제 몸을 감싸안고 주저앉아 있을 참이었다. 미카엘은 입술 사이로 도망치는 고통을 삼키고, 고통을 댓가로 내리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찬란하고 따스한 햇살을 피해 웅크려 있을 게 분명했다. 또한 그가 아는 미카엘은 고통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은총을 사용하고 다시 앓아누울 미련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가브리엘이 잔소리를 퍼붓거나 화를 낸다고 해서 변할 성정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형제로서 미카엘을 지켜보았지만 정작 이런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갑갑한 마음을 추스리며 걸음을 옮겼다. 멈췄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날개가 또 한 번 들썩였다. 가브리엘은 날개 바로 앞까지 가서야 입을 떼었다.


  "미카엘."


  가브리엘은 차분하게 미카엘을 불렀다. 목소리에는 방금까지 느꼈던 답답함이나 분노 따위가 섞여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형제가 홀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랐다. 어둠에서 탄생한 순간부터 함께였던 형제가 곁에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가브리엘은 미카엘의 날개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발이 닿은 땅에 그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날개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 있어, 미카엘. 가브리엘은 그 생각을 끝으로 침묵했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눈 앞에 있는 형제에게 집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느릿한 한숨소리가 날개 안 쪽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기다리던 형제가 날개를 거두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미카엘은 한눈에 보아도 힘들어보이는 얼굴로 가브리엘을 마주보았다. 가브리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대답 대신 팔을 최대한 뻗어 미카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따스한 바람에도 미약하게 떨리던 몸이 토닥이는 손길을 따라 점차 안정을 찾았다. 미카엘은 가브리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제야 가브리엘은 푸스스 맥빠진 웃음을 터트리며 미카엘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돌아가자. 깨어날 때까지 곁에 있을테니 푹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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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

[Dominion] 단문

2015. 8. 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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