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w. Edyie
1.
뭐? 내가 죽는 꿈을 꿨다고?
솔로는 그렇게 되물으며 슬쩍 눈꼬리를 접었다. 일리야는 웃음기가 잔뜩 서린 눈동자와 마주하다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이 주제는 심각하고 웃을 수 없는 문제인데 솔로에게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애써 얘기하지 않으려던 이야기를 끄집어낸 장본인은 심각하게 잠긴 일리야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기어코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난 또 무슨 심각한 얘기라고."
"웃지 마라. 심각한 얘기가 맞다."
"페릴, 꿈은 꿈일 뿐이야. 난 여기 살아있고 자네 옆에 있어."
툴툴거리다가 조금 화가 나 홱 돌아보았더니 돌아오는 말이 부드럽기 그지 없다. 일리야가 솔로와 함께 일을 하고, 같이한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지만 이런 갑작스런 공격엔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일리야는 뭐라 대꾸하려 입을 열었다가 허- 하고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일을 생각해보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리야 쿠리야킨과 나폴레옹 솔로를 두고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적당히 몸을 사릴 줄 아는 솔로보다야 위험에 부딪히는 일이 많은 일리야가 위험부담이 더 컸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항상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는 법이었다.
일리야는 서늘한 생각이 떠오를 때면 솔로를 붙잡고 강조했다. 조심해라, 카우보이. 그러면 솔로는 슬쩍 시선을 마주하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야를 안심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지만 효과는 썩 괜찮았다. 꿈에서 보았던 얼굴 위로 그가 좋아하는 표정이 덧씌워졌다.
일리야가 꿈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눈 앞에서 솔로를 잃었다. 방법은 정해져있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총을 맞고 쓰러졌고, 어떤 날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자신에게 뻗어지는 손을 잡지 못했다. 또 다른 날에는…….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일리야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악몽을 꾸었다. 절반은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내용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솔로에 관한 내용이었다.
2.
폭발음이 들렸다.
일리야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재빨리 눈을 돌렸다. 천장이 날아간 건물이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리야와 개비가 솔로를 백업하기 위해 향하고 있던 장소였다. 건물 안에는 솔로가 붙잡혀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 솔로가 살아남을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터지는 폭음이 점점 건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일리야가 손을 잘게 떨었다. 곁에 있던 개비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어떠한 말 대신에 고개를 저으며 일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일리야는 눈을 사납게 뜨고 그녀를 뒤로 한 채, 건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일리야의 외침이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울려퍼졌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3.
모두가 했던 예상대로 그의 묘비 앞에 모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웨이벌리와 개비, 일리야가 전부였다. 한 때 유명했던 요원을 품은 관이 땅 속으로 사라지자 까만 정장차림으로 모여있던 인파는 걸음을 돌렸다. 묘비가 세워질 때까지 자리에 남은 이들은 시작을 함께 한 셋이었다. 개비는 발갛게 된 눈으로 잿빛 비석을 쳐다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혼자 조금 떨어져 서있던 일리야에게 다가오더니 늘어진 일리야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때까지 가만히 멈춰있던 손가락이 온기에 놀라 슬쩍 떨리기 시작했다.
"일리야." 개비는 일리야를 부르며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탓에 작은 어깨가 잘게 떨리는 모양이 눈에 들어왔지만 일리야는 멀거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에게 개비를 위로해줄 만한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개비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소리없이 눈물을 떨어트렸다. 결국 그녀는 하고 싶던 말을 삼키고서 한 손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아낸 후에야 일리야를 끌어안았다.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굽혀 높이를 맞춰주는 일리야의 귓가에 개비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먼저 갈게요. 생각 정리하고 와요."
개비는 일리야에게서 손을 떼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웨이벌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낮게 한숨을 쉬었다. 웨이벌리는 수많은 위로의 말 대신 하얀 꽃 한 송이를 묘비 앞에 내려두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얀 꽃잎은 눈을 시리게 만들어 일리야는 꽃잎을 응시하다말고 눈꺼풀을 내려감았다. 웨이벌리가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쳤지만 감긴 눈은 그대로였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일리야는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허벅지 위에 올려진 손가락만이 불안한 박자로 까딱였다.
일리야는 눈을 뜬 순간 마주해야 할 현실이 감당할 정도인지 가늠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길 바랐던 장면이 펼쳐지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슬픔이 쏟아져나왔다. 비석 아래로 이제 막 갈무리 된 흙이 불어오는 바람에 버석하니 흩날렸다. 그보다 더 안쪽에 솔로가 있었다. 일리야는 폭발 잔해에서 겨우 찾아내었던 그을린 시신이 떠올라 고개를 털었다.
꿈은 꿈일 뿐이야. 웃음기를 머금었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 때 솔로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일리야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일리야는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떼었다.
"나폴레옹." 새어나간 목소리가 형편없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너에게 꿈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말을 마친 일리야가 비석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 끝에 서늘한 감각이 맴돌자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폴레옹 솔로. 일리야는 새겨진 이름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깰 수 없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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