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r] 침몰 (For. 현제)

2012. 12. 3. 00:47 from 사각사각

Thor Fan Fiction

침몰 (For. 현제)

w. Edyie





그는 가라앉고 있었다. 끝이 어디로 이어질 지, 어디서 끝나는 지도 모르는 깊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눈부시게 빛나는 다리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어삼켜질 어둠을 굳이 더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저 위에서 빛나는 찬란한 왕국은 그에게 있어서 꽤나 오랫동안 고향이라 믿었던 곳이었고,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비록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할 지라도 그가 겪었던 일들은 신기루 따위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죽음인지 아니면 또다른 형벌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새겨넣듯 꼼꼼히 바라보았다. 쥐고 있던 궁니르의 끝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는 모든 힘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저 위에서 놓아버린 것은 비단 궁니르 뿐만이 아니리라. 정말 저 위에 있던 모든 것들. 거기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미련이 그와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무게가 더해져서 그가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가지고 있던 미련의 무게는 제법 무거웠다.


떨어지는 내내 귓가를 타고 휑한 바람소리가 감겨들었다. 로키는 느릿하게 바람을 쥐듯 주먹을 말아보았다. 그러자 잡힐 듯 했던 바람은 그의 미련들처럼 휙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렸다. 그는 허탈한 기분으로 웃으며 빛나던 다리에서 조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입가에 걸려있던 쓴웃음을 천천히 삼켰다난간에 매달려 있던 그의 형제가 어느 새 다리 위에 올라앉아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뭐라 소리를 치는 것도 같았지만, 날카로운 바람소리 떄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로키의 머릿 속에서 미련은 버리라는 이성과 안녕을 고하기는 싫다는 감정이 서로 부딪혔다. 그래서 그는 뭐라하는 대신 힘없이 늘어트리고 있던 팔을 바이프로스트를 향해 들어올렸다. 따스해보이는 빛 대신 차가운 바람만이 손 끝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그 빛에 닿으려고 달싹이던 그의 길게 뻗은 손가락이 싸늘함에 파르르 떨리다 동그랗게 말려들었다. 머나먼 따스함이 닿을 리가 없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텐데, 어리석기는. 그는 자신에게 책망의 말을 던지고는 다시 손을 거두었다. 그는 여전히 가라앉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였을 뿐인데 그의 시야는 검푸른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사이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희미한 금빛이 거기에 바이프로스트가 있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빛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뒤로 사라져버리고 그는 눈을 감았는 지 떴는 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로키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도 어둠 속을 헤매이는 기분이 마치 눈이 멀어버린 기분이라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아, 그는 눈을 감는 소소한 행동으로 눈 앞의 어둠을 피했다. 사뿐히 불어오는 바람만이 둔해진 감각을 자꾸 흔들어깨워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그 바람마저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이 어둠을 겪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둠과 단 둘이 마주하게 할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서히 물에 빠져들 듯 발꿈치가 서늘해지고, 다시 그 서늘함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그의 등 뒤를 적셔놓았다. 눈을 감아 선명해진 감각이 그 모든 사실을 그에게 전해왔지만 로키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어둠이 하는 일들을 그저 가만히 받아들이기만 했다. 발 끝에 닿았던 서늘함이 그의 비어버린 가슴과 메마른 눈으로 감겨들었다. 똑, 똑. 이마를 두드리고 바닥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그의 아래에서 고여 샘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명한 푸르름과 짙은 어둠이 그의 형제와 로키처럼 오묘하게 섞여 감겨있는 눈꺼풀 사이로 파고드는 그 곳에서, 그는 가라앉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 지 알 수 없는 이 침몰 속에서 그는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붕 떠오른 느낌 그대로, 어둠이 그를 이끄는 대로,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Where am I.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그 말에 대답해주는 이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태양의 빛이 번쩍이며 어두운 바다를 밝게 비추었다. 이보다 더 깊은 심해로 빠져들며 로키가 마지막을 볼 수 있는 빛, 이 푸르른 어둠의 끝을 알리는 빛이었다. 감긴 눈이 부시도록 번쩍인 빛이 점점 옅어지며 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물결은 사라지고, 이내 시린 기운이 온 몸을 감싸안았다.


I'm dying.

한기에 얼어붙은 입술을 애써 떼어내 소리내어 보았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자신의 모습이 꽤나 우스울 거란 생각을 하며 그는 메마른 목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느린 한숨이 비집고 나왔다. 아까 바이프로스트와 같이 이 아득하게 멀어진 빛마저 사그라들면... 로키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감고 있던 파르르 눈을 떴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면과 비슷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둠 역시 변하지 않고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I'm dying. 아까 하려던 말을 소리내어 말하고 나서야 그는 겪고 있는 모든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악몽이 아닌 그가 겪고 있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로키는 눈을 감아도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꺼풀은 잠깐이라도 쉬라는 듯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스르륵 내려감겼다. I'm dying. 로키는 다시 끝 모를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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