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ion Kill Fan Fiction

Peaceful Sunday

w. Edyie


Sextet (Trailer song) by Cloud Atlas on Grooveshark



  0853 AM

  끙. 브랫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자리에 누운 채 눈을 깜빡였다. 흐릿했던 시야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점점 선명해졌고 끝내는 좁은 거실 천장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Shit. 입 안에서 굴러다니던 욕을 내뱉으며 브랫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니 그가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뒤부터 세 시간여 가량 지나있었다. 세 시간이라. 브랫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하루를 꼬박 새고도 다음날 56분 밖에 못 자던 어느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오래 자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 브랫은 시계 한 쪽에 작게 표시된 날짜를 보며 지나온 날짜를 새어보았다. 이라크에서 전역하고 돌아온 지 이제 꼬박 한달 째였다. 그러니까 꿈에서 그 빌어먹을 이라크 전쟁터를 보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는 소리였다. 어울리지 않지만 그립다는 표현이 이런 건가. 브랫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뭐든 부족하고, Marines make do를 입에 달고 다니던 상관들이 무식하게 지휘하던 전쟁터가 뭐가 좋아서 이러는 건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그리움이었다.


  브랫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윗선에서는 그런 브랫과 다른 중대원들에게 '전역'을 축하한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이 개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대원들의 노력 덕에 한숨 돌렸다는 표현을 썼지만 전쟁은 끝나지도 않았으며, 조국은 전쟁터에서 피폐해진 군사들의 심신이 염려스럽다는 이유로 새파랗게 어린-브랫이 보기엔 꼭 험비에서 총 쏘면 안되냐고 징징대던 과거의 트럼블리 같은- 녀석들을 전쟁터에 몰아넣고 총탄과 포성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군인들을 강제로 귀국시켰다. 에스페라 같이 가정이 있는 놈들은 드디어 가족을 만난다며 기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전쟁터에서 먹고 자고 싸고 총 쏘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되려던 그들에게 귀국은 하나도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브랫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돌아가고 싶은 이유라고는 두고 간 바이크 밖에 없었던 그에게 귀국이란 윗선에서 시도하는 일종의 물갈이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략의 '전'자도 모르는 멍청한 엔시노맨과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는 케이시케이섬, 무식한 캡틴 아메리카는 전장에 남아있었고, 픽 중위를 중심으로 한 브라보 2소대는 분대당 적어도 두어명이 귀국하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 소대장인 픽 중위의 이름은 귀국명단에 올라있지 않았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썰물처럼 빠진 브라보 2소대와 3소대에 윗선과 연줄이 닿는, 즉 자기 친척 중에 어디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던 캡틴 아메리카 같은 녀석들이 온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정신나간 새끼들. 들어올 데가 없어서 이 밑으로 기어들어온답니까. 네이트로부터 전역소식을 듣던 회의에서 브랫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네이트는 그런 브랫과 눈을 마주치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네이트에게 좋지 않았고, 그렇게 될 판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익숙한 듯 또 홀로 뒤집어쓸 모양이었다. 브랫은 부대원들을 아끼는 네이트의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윗선은 절대 항명 따위 받아들일 치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그다드 입성 내내 겪었던 부대원들이 더 잘 알았다. 결국 상황이 얼토당토않은 꼴로 굴러가자 브랫은 귀국하자마자 다시 파병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의 파병지원서에 대해 국방성에서 '정세가 안정되었으니, 적절히 안정을 취한 후에 다시 신청하세요.'라는 답변을 보냈을 때, 브랫은 그 편지를 그대로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런 뒤로 시간은 엿같이도 빨리 흘러 벌써 3주나 지나갔다. 그리고 브랫은 그 사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귀신같이 브랫의 번호를 알아내 가끔 걸려오는 레이의 전화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존나 냉정한 아이스맨, 나 안 보고 싶었어요?" 귀국하고 처음으로 익숙한 목소리를 접한 브랫은 긍정이나 부정 대신 레이에게 '스토커같은 새끼'라며 웃음 섞인 농담을 던졌다. 레이는 숨 넘어갈 기세로 낄낄대더니 사막에서 다이어트 약을 먹고 떠들었던 때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같이 전역한 부대원들의 근황이 주된 내용이었다.

  통화 방식은 주로 레이가 TV 쇼프로에 나오는 우스꽝스런 스타처럼 설명하면 브랫은 고개만 주억거리는, 일방적인 정보전달이었다. 자주 통화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했다하면 휴대전화가 뜨거워질 때까지 이어지는 레이의 수다는 여전히 브랫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브랫은 적당한 추임새를 맞춰주며 듣다가 "레이, 다이어트 약 빨리 끊어라. 왜 전역하고 나서도 네 입은 때를 맞춰서 닥치는 법이 없냐."따위의 지적을 남기고 레이가 뭐라 하기 전에 끊어버렸다. 그러면 다행히도-적어도 브랫에게는- 레이는 다음 통화까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이처럼 귀국한 이후, 브랫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과 정말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편히 잠들 수 있는 침대가 불편한 적이 몇 번 있었고, 마음대로 바이크를 타고 질주를 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가장 와닿는 변화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귀국했을 때처럼 그는 아무 일도 없이 평탄한 하루를 쳇바퀴 굴리듯 보내고 있었다. 그건 다시 파병시기가 오면 간단한 짐만 꾸려 훌쩍 떠날 준비를 하는 브랫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비슷한 하루를 비슷하게 보내는 것. 전쟁 내내 긴장감 속에서 고생했을 머리통에게 얼마 안되는 짧은 시기동안 안정감을 밀어넣는 나름대로의 치료방식이었다.


  덕분에 브랫은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구부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느리게 눈을 끔뻑이다 정신이 들 때 즈음, 일어나서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로 간단한 아침을 차려먹고 설거지를 끝냈다. 입고 있던 티셔츠를 돌돌 말아 벗어올린 뒤 세탁기에 던져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는 일도 잊지 않았다. 브랫은 이제 늘 하던대로 집 근처 공원을 가볍게 돌고 올 생각이었다. 모두가 다 쉰다는 일요일이었지만 그의 일상엔 변화가 없었다. 쾅. 문이 닫히고 열쇠로 문을 잠그는 소리가 지나자, 브랫의 발소리만 조용한 아침 맨션에 울려퍼졌다.



  0937 AM

  브랫은 건물에서 빠져나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공원을 가볍게 뛰었다. 그러고나니 꼭 이라크에서 건조한 풀밭 위를 두 팔 벌려 뛰던 때처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이번엔 그 때와 달리 두 손은 얌전히 주머니에 꽂혀있었지만. 브랫은 그렇게 나름대로 기분전환을 마치고 공원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느긋하게 앉아 담배 한 개피를 피고 있으려니 반절 정도를 태우고 나서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닝키스를 주고받으며 서로 감싸 안는 어린 연인도 있었고, 제 덩치만한 개를 데리고 까르르 웃으며 공원을 뛰어다니는 아이, 건너편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도 있었다. 브랫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은 그의 양부모가 유태인 방식의 교육을 시킬 때 교양을 쌓기 위해 몇 번 억지로 데리고 간 게 전부라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브랫은 그 때와 비슷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총성과 포성이 아닌, 평화롭고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브랫만 캔버스 밖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전쟁터를 두 번이나 다녀온 그와 마냥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이 같을 리 없었다. 그는 피폐했던 전쟁터를 '비디오 게임보다 못하다'라고 표현하던 트럼블리처럼 즐긴 건 아니었지만, 아직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지도 못한 편이었다. 그래서 분명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다지 좋은 경험이 되지 못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자 기껏 풀어놓은 기분이 다시 가라앉을 기세였다. 브랫은 다 피운 담뱃불을 끄며 작게 욕을 짓이겨 뱉었다. 그는 차라리 레이의 전화를 듣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일어나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을 준비할 때 식료품이 거의 다 떨어지고 없는 상태였던 사실이 얼핏 떠올랐다. 이 근처에 수퍼마켓이 어디 있더라.


  일요일 아침부터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공원은 시끌벅적했다. 브랫은 예전에 레이가 험비에서 하던 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도시 소음 사이에 묻혀 그의 허밍은 희미하게 들렸다 안들리기를 반복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늘은 그가 사막에 있을 때 마냥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Fuck. 브랫은 하늘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끌어내리며 제각기 흘러가는 인파 사이로 끼어들었다. 필요한 식료품을 한 번에 사려면 공원에서 십여분 정도는 걸어가야 나오는 수퍼마켓으로 가야했다. 급할 필요는 없었지만 얼른 집에 돌아가서 한숨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브랫은 걸음을 재촉했다.



  1014 AM

  위잉 소리를 내며 자동문이 양쪽으로 밀려났다. 브랫은 한 번에 쏟아지는 햇볕 탓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인 채 길가로 걸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제법 커다란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미국에 돌아오면 레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레토르트 식품이나 통조림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돌아와보니 현실은 도로 레이션 같은 식사였다. 물론 계란 프라이나 베이컨 같은 간단한 음식은 해먹는 편이었지만 그는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음식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번 나가서 사먹자니 그것도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브랫은 장을 볼 때면 어김없이 레토르트 식품 몇 개와 빵, 우유 같은 먹거리를 종이봉투에 쑤셔넣고 돌아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제법 나가는 무게 탓에 봉투가 찢어지지 않게 큰 손으로 아래를 받쳐 끌어안았다. 덩치 큰 남자가 어린 아이를 안아올린 듯한 자세로 쇼핑봉투를 안고 가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퍽이나 웃겨 보일 꼴이었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브랫은 그 꼴로 왔던 길을 터벅터벅 걸어 귀갓길에 올랐다. 그러다 맨션 입구가 보이는 위치에 다다르자, 갑자기 겉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잘게 울었다. 브랫은 한 쪽 손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넣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였다. 그는 살짝 인상을 썼다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첫 마디부터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레이. 시간이 남아돌면 종교라도 가져."

[전화 받자마자 그딴 소리할 거예요? 난 확인차 전화한 건데. 졸라 섭섭하네요.]

"뭘 확인해. 내가 어디서 총이라도 맞았을 까봐?"

[푸하하. 브랫은 총빵을 놨으면 놨지, 당할 사람은 아니죠.]

"친절한 설명은 고마운데 헛소리 그만하고, 또 왜."


  통화를 하며 어느 새 자신이 사는 집 앞에 도착한 브랫은 다른 주머니에 넣어놨던 열쇠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다. 잠시 머무를 예정인 집열쇠에 뭘 주렁주렁 달기도 귀찮아 작은 열쇠만 달랑 들고 다닌 탓에 열쇠는 자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두 번 빠져나가자 브랫은 작게 욕을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한 쪽 어깨와 머리 사이에 고쳐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정을 알 리 없는 레이는 브랫의 시큰둥한 반응을 뒤집을 만한 예상외의 소식을 전했다.

 

[네이트가 브랫 안부 묻던데 아직 못 만났어요?]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 전쟁터에 있는 엘티가 여기까지 전화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소린지 알고 있을텐데."

[무슨 개소리예요. 네이트 전역했어요.]

 

  브랫은 코웃음 치려다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잠시 말을 멈췄다가 레이에게 재차 물었다. 전역이라고? 브랫의 반응이 재미있었는 지 수화기 너머에서 레이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히히히, 브랫 존나 놀랬나보네요? 맞아요. 우리의 네이트 픽 중위가, 지금, 미국에 왔다고요. 레이가 강조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지만 반쯤은 웃음소리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브랫은 웃음소리가 멈추길 기다리다 "잠깐."하며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는 종이봉투를 고쳐잡았다. 자세는 여전히 불편했고, 뜻밖의 소식을 전하는 레이의 수다까지 얹어지니 잡힐 열쇠도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브랫이 두어번 더 뒤적여 열쇠를 찾아 꺼낼 때까지 그 상황은 계속되었다. Gotcha. 끝내 손에 감겨든 열쇠를 잡으며 작게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불쑥 손이 나타나 브랫이 안고 있던 종이봉투를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브랫은 무슨 친절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종이봉투를 들고 웃고 있는 사람은 레이가 신나게 말하던 픽 중위였다. 브랫이 이라크에 있는동안 멍청한 상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뜻을 존중했던 인물. 말도 안되는 명령 때문에 고생하고, 부대원들을 살린다고 고생했던 소대장. 부하들을 위해 혼자 윗선의 똥물을 뒤집어 쓴 중위. 그는 그런 네이트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브랫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안녕, 브랫. 별 일 없었어?"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지만 그 모습이 하도 진짜 같지 않아서 브랫은 그저 빤히 네이트를 쳐다보았다. 조용한 와중에 레이도 네이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브랫? 브랫?"하고 앵무새처럼 브랫을 불러댔다. 브랫은 갑자기 들이닥친 네이트에, 아까보다 더 신이 나서 떠드는 레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빨리 하나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이 상황이 해결될 거 같지 않았다. 브랫은 우선 짐을 안고 있었던 손으로 휴대폰을 고쳐잡고 간결하게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레이, 끊는다."


  물론 대답을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제법 깔끔하게 통화를 끝낸 브랫이 이번에는 네이트에게 몸을 돌렸다. 네이트는 브랫과 눈을 마주치자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쟁터에서나 여기서나 레이랑은 아직도 여전한 모양이네." 그 말에 브랫은 대답 대신 피식 웃어넘겼고, 옮겨붙은 듯 네이트도 똑같이 웃었다. 브랫은 묻고 싶은 말 대신 형식적인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미국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한 5일 정도 되었지. 이렇게 돌아다니는 건 오늘이 처음이고."

"전역하고 첫 방문 장소가 이런 낡고 좁아터진 맨션이라니. 여전히 센스가 없으시군요."

"센스가 있었다면 이러고 있지 않았겠지."


  네이트는 훤히 드러난 짧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브랫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는 품에 안고 있던 브랫의 종이봉투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브랫과 눈을 마주쳤다. 브랫이 보기에 조금 멋쩍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브랫이나 네이트, 두 사람 다 말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었던 데다가 전쟁터에서 필요한 말만 전하던 습관이 들었으니 어찌보면 이 상황은 당연한 모습이었다.

  쓸데없이 전우애를 불태우며 나눌 모험담은 존재하지 않았고, 신랄하게 비판받아 마땅할 상관들의 뒷담화는 요정이야기만큼이나 일어날 확률이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 동안 지낸 서로의 이야기 밖에 없었지만, 브랫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 기억을 곱씹어보다 그만두었다. 대신 이번에는 네이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명령을 내리던 때와 닮은 담담함이 묻어있었다.


"책을 쓸까 해. 전쟁터에서 겪었던 일들, 거기서 느낀 감정들을 전부 솔직히 담아서 말이야."

"그런 책을 누가 재밌다고 읽겠습니까."

"하하, 재미는 없겠지. 그렇지만 이 생활을 정리할 겸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시 파병가실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브랫은 손 위에서 돌리고 있던 열쇠를 콱 잡아채며 완곡하게 물었다. 네이트가 이끌던 브라보 2소대가 전원 그대로 돌아갈 거란 상상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없는 브라보 2소대는 금방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네이트는 종이봉투를 고쳐잡기 위해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라크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야. 그래서 다른 부대원들도 지금처럼 이런 방식으로 만나려고 생각 중이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긍정이었다. 브랫은 아쉽게 되었다는 인사를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말을 꺼낸 건 네이트가 먼저였다.


"그런데 브랫."


  브랫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왜 그러냐는 의미로 네이트와 시선을 마주쳤다. 늦은 아침햇살이 네이트의 짧은 머리 위로, 그가 안고 있는 쇼핑봉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네이트는 얼굴 비스듬히 떨어진 햇살을 손으로 막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자기 온 손님이 할 소린 아니겠지만... 계속 여기 세워둘 건가? 먼 길 오느라 조금 지쳤는데."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무척이나 해사해서 브랫은 얼른 손을 뻗어 열쇠를 꽂고 돌렸다. 철컥,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맨션 복도에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문고리를 돌리고 활짝 문을 열어젖힌 브랫은 슬쩍 한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시죠, 손님."


  제법 그럴 듯한 인사에 화답하며 네이트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고 브랫이 그 뒤를 따랐다. 쿵.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가득하던 맨션 복도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조용해졌다. 평화로운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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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dy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