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 Atlas] Stay

2013. 9. 6. 22:53 from 사각사각

+ 영화 기반

+ 캐릭터해석은 영화 기반으로 내키는 대로, 정말 마음대로 해보았습니다.


Cloud Atlas Fan Fiction (Sixsmith/Frobisher)

Stay

w. Edyie



미끄러지듯 깔끔하게 호텔방으로 들어온 루퍼스 식스미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10대 소년처럼 천진난만하다 못해 로버트의 눈에는 멍청하게까지 보이는, 사람 좋은 인상을 걸고서 만나기로 한 호텔방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당연히 로버트는 토라진 척을 하며 그에게 등을 내보인 채 노을빛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악보를 두고 끄적이고 있었다.

프로비셔, 나 왔어. 안 반겨줄 거야? 그렇게 묻는 루퍼스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들린다는 듯 허공에 손가락을 들어올려 작게 까딱거리고 더욱더 악보에 시선을 묻어버렸다. 루퍼스는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도 로버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제야 루퍼스는 상황이 이해가 가는 지 피식 김 빠지는 웃음을 짓고 로버트에게 다가왔다.


"미안해.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전보는 자네가 보내지 말라길래."

"보내지 말라고 할 때는 보내고, 보내야 할 때는 안 보내고? 식스미스. 너한테는 정말 이만큼의 융통성도 찾아볼 수가 없네."

"하하. 그래서 이렇게 토라진 거야?"


루퍼스는 소리내어 웃으며 작업을 하고 있는 로버트의 등 뒤에서 그를 감싸안았다. 그와 동시에 꽤나 그리웠던 루퍼스의 체취가 로버트의 코 끝에 맴돌았다. 로버트는 여전히 악보만을 바라보며 끄적이고 있었지만, 그가 적고 있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루퍼스를 향한 비난이었다. 멍청이(Idiot). 기분 내키는 대로 휘갈겨 쓴 글씨를 내려다보던 루퍼스는 로버트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저런, 악보에 낙서를 하는 작곡가라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러게 미안하대도. 오랜만에 봤는데 얼굴도 안 보고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조금은 서운하다는 투로 로버트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은 로버트가 몸을 반쯤 돌려 루퍼스를 마주보았다. 못 본 사이 많이 수척해진 얼굴과 눈 밑으로 슬쩍 내려앉은 찌든 피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로버트는 다시 속상한 마음에 루퍼스를 마주 안았다.


"어서 와, 식스미스. 기다리다 지쳐 죽을 뻔 했어."

"나도 보고 싶었어."

"오, 누가 보고 싶었대?"


재치있는 대답에 로버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루퍼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자신을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루퍼스 때문에 얼마 못 가 그와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화를 내고 싶어도 이런 행동 하나에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 루퍼스에 대한 그의 마음이 생각 이상이라는 사실을 종종 깨닫곤 했다.

그래서 로버트는 루퍼스의 목 뒤로 손을 뻗어 그를 아래쪽으로 확 잡아끌었다. 마치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서 인어가 선원들을 유혹할 때 그랬던 것처럼. 로버트는 자연스럽게 숙여진 얼굴에 입술을 대었다. 쪽. 짧은 소리와 함께 루퍼스의 코끝에 내려앉은 입맞춤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슬며시 눈을 내려감았다. 눈을 감은 탓에 입술이 뺨에도 닿았다가 이마에도 닿기도 했지만 둘은 실눈도 뜨지 않고 입술의 감촉만으로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입을 맞추다가 이유없이 새어나오는 웃음에 잠시 머뭇거리며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둘만의 시간을 확인했다. 발갛게 타오르는 노을빛만이 따스하게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   *   *



"식스미스."

"으음.... 응?"


로버트는 아직 잠이 덜 깬 루퍼스의 어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푸흐 하고 웃었다. 두 사람의 기상시간이 바뀌어야 정상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루퍼스가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긴. 요며칠 연구다 뭐다 자신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바빴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겨우 쉬겠다고 찾아온 루퍼스를 로버트가 잠들만하면 깨우고, 유혹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로버트도 루퍼스에게 심통이 나있었다. 물론 그런 감정들도 루퍼스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풀려버렸지만.

연락이라도 줬더라면 덜 서운했을텐데 그런 면에서만 융통성 없기로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루퍼스 식스미스는 그의 연인에게 전보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평소엔 위험하다고 로버트가 말려도 괜찮다며 전보를 보내놓고서는!- 덕분에 로버트는 그와 연락이 끊긴 다음날부터 사소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어젯밤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화가 풀린 건 별개의 문제였다.

로버트는 아직도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루퍼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더 자라고 속삭여주고는 먼저 이불을 빠져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입은 그는 어제 루퍼스와 입을 맞추었던 테이블 앞에 앉았다. 악보는 어제 로버트가 펜을 떼기 직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미동도 없이 한참동안 악보를 내려다보았다. 그 곡은 완성되었지만 마땅한 곡명이 생각나지 않아 잔뜩 골머리를 앓았던 곡이었다. 로버트는 꽂아두었던 펜을 다시 손에 쥐고 구석에 적힌 '멍청이'라는 글자 위에 두 줄을 그었다. 그리고 제목을 쓰는 공간에 망설임 없이 글자를 적어나갔다.

Stay. Composed by Robert Frobisher. 그제야 로버트는 개운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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