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ze Runner] 상실

2014. 10. 20. 00:21 from 사각사각

※ 메이즈러너 스포주의

- 민호 중심(그냥 민호가 쓰고 싶었습니다)



상실

w. Edyie





  - 제발 내 말 좀 들어봐! 민호! 내 말을 들어보라고!


  붙잡혀 끌려오는 소년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민호는 입을 꾹 다문 채 끈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민호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벤은 몸도 제대로 가두지 못해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그를 따랐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글레이드의 허공을 헤매다가 미로의 앞에 왔을 때야 눈에 띄게 흔들렸다. 추방이 결정된 벤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악을 썼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벤은 목구멍 안 쪽으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강제로 무릎 꿇려졌다. 주변을 둘러싼 소년들은 검고 탁한 타액이 그의 입에서부터 턱을 타고 길게 흘러내리는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민호는 벤의 손을 억압하던 끈을 칼로 끊어내고는 다른 손에 들려있던 벤의 조촐한 짐꾸러미를 미로 안 쪽으로 던져넣었다. 벤은 절망과 분노가 가득 찬 눈빛으로 미로 입구와 자신을 둘러싼 소년들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 나을 수 있어! 시간만 지나면 나을 거란 말이야!

  - ...장대 준비!


  벤을 잠시 내려다보던 알비는 그렇게 외치며 세우고 있던 장대를 내려 그 끝을 벤에게 들이밀었다. 대장의 목소리에 따라 아이들은 천천히 장대를 내려 그와 똑같이 행동했다. 장대에 에워싸인 벤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허사였다. 대신 기분 나쁜 바람이 미로에서부터 불어나와 벤의 등을 휘감았다. 장대를 쥔 소년들은 미로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소리를 들어가며 더 힘을 주어 벤을 밀어냈다. 같은 말을 반복하던 벤은 문 틈에 끼이기 직전에서야 스스로 미로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허탈한 눈빛으로 글레이드 쪽을 응시했다. 괴로운 얼굴로 토해내는 신음소리가 좁은 돌 사이를 거세게 부딪혀 울리며 글레이드로 흘러들어왔다. 그 소리를 끝으로 커다란 미로의 문은 육중한 소음을 내며 닫혔지만 쉽게 돌아서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구 하나 먼저 목소리를 내려고도 하지 않는 때이른 침묵이었다. 알비는 닫힌 입구를 바라보다 장대를 들고 글레이더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미로가 녀석의 집이야. 알비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은 원래 자리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의식과도 같은 일에 참여한 누구나 벤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다.


  - 미로에서 밤을 보내고 살아돌아온 사람은 없어.

  정해진 룰보다도 명확한 사실은 모두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민호는 선뜻 돌아서지 못하고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벤의 손목을 묶고 있던 끈이 잘리는 과정에서 잘게 부스러져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문 앞에서 잠시 맴돌던 조각들 중 작은 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글레이드 깊숙한 쪽으로 팔랑이며 사라졌다. 남은 것은 매듭지어진 무거운 부분 뿐이었다. 민호는 묵직하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얼마나 아이들과 친한 지는 중요치 않았다. 결국 가장 비참한 말로는 늘 이런 식이었다. 러너들을 잃을 때마다 뼈저리게 새겨지는 사실이었지만 몇 번을 겪어도 통증은 같았다.


  민호는 자리에 돌아와서 누울 때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알비가 내일 아침 일찍 함께 미로에 들어가 벤이 그리버에게 찔린 곳을 가보자는 얘기를 했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간신히 고개만 끄덕여 알았다고 답을 했을 뿐이었다. 머릿속 가득히 함께 뛰었던 러너를 '또 다시' 잃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다른 잡념은 틈을 파고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언제나 그래왔듯 민호는 자신이 오늘도 잠에 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미로의 입구를 바라보느니 눈을 감는 편이 나았다.

  눈을 감자 겪어본 적 없는 소용돌이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민호는 두터운 미로 너머로 비춰졌던 벤의 절망적이던 눈빛에서 시작된 소용돌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커다랗고, 무서울 만큼 조용한 소용돌이였다. 그리고 소용돌이가 글레이드를 뒤덮을 만큼 커졌을 때에야 민호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



  "민호! 알비를 버려!"

  민호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글레이드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갤리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목청 높여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민호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면서도 손에 잡힌 알비를 놓지 않았다. 체격이 좋은 알비는 아무리 민호가 힘을 주어 당겨보아도 느리게 바닥을 쓸기만 할 뿐, 좀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7구역 블레이드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이미 많은 체력을 소모한 뒤였던 탓에 두 사람을 이끌만한 힘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알비 역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두 사람이 글레이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로의 문이 먼저 닫힐 판이었다. 러너들을 이끄는 민호가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민호는 천천히 스며드는 최악의 경우를 떨쳐내며 있는 힘껏 글레이드를 향해 움직였다.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운 몸짓에 아이들은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민호를 불렀다. 그 중에서도 갤리를 따라 알비를 버리라는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지만 민호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어제 벤을 잃었다. 하지만 글레이드가 미로에서 잃은 소년은 비단 벤에 그치지 않았다. 벤 이전에도 많은 러너들이 그와 함께 달리다가 그리버에게 죽었거나 발작을 일으키다 미로로 떠밀렸다. 러너가 된 이후 줄곧 봐왔던 광경 하나하나가 민호의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은 조금씩 변화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 그리버를 만나면 같이 들어갔던 러너와 살기 위해 각자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가 죽지 않기를 빌었다. 누구에게 부탁하는 지도 모르게 간절히 빌다가 끝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적지 않았으며, 시간이 꽤 지난 뒤에 미로를 탐사하던 중, 갇혔던 러너의 물품을 발견한 적도 많았다. 비참한 흔적을 눈에 담다가 홀로 울음을 토한 적도 있었다.

  미로에서 생겨나는 모든 상실은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그래도 민호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행동했고 상처는 아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알비가 그리버에게 찔리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민호는 자신의 그런 믿음이 망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알비를 구해내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알비는 발작과도 같은 증상을 보이며 상처부위부터 시커멓게 물들어갔고 민호는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버에게 찔린 사람을 구해내는 약 따위가 글레이드에 있을 리 없었지만 알비를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글레이더들이 알비를 얼마나 의지하고 따르는 지는 갓 올라온 신참마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겠다고 알비를 버리면 글레이더들이 겪을 상실은 누가 감내해야 하는가. 민호는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단숨에 지워내며 악을 썼다. 문이 벌써 반 이상 닫혀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빨리!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점점 팔다리의 힘이 빠져나갔다. 문 너머로 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손을 뻗는 뉴트와 놀란 눈을 하는 척의 얼굴이 보이던 찰나에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울러퍼졌다. 쿵. 민호는 그 소리를 듣고나서야 알비를 내려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제 문 너머에서 벤이 느꼈던 감정이 이렇게 비참했을까. 민호가 애써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며 고개를 들자, 비틀거리는 인영 하나가 그와 마주한 자세로 주저앉아 있었다. 새로 들어왔다는 신참이었다. 그렇게 미로를 기웃거리더니 결국엔 멍청하고 무모하게도 들어왔구나. 민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신참을 향해 날카롭게 내뱉었다.


  "참 잘했네. 이제 너도 죽은 목숨이야."


Posted by Edyie :